집착
정작 써야할 것들은 쓰지 못하고 어줍잖은 감상이나 얕은 느낌들만 쓰고 있다. 어제 모처럼 내 리뷰들을 보고 든 생각이다. 그러니 시간이 지나면 물에 씻은 듯 하나도 기억나지 않을 수 밖에. 뭔가 내 속에 도사리고 있는 기억, 감상들과 대면을 해야하는데 '우리 언제 만나'하고는 영영 만날 생각을 안하는 데면데면한 사이처럼 그냥 그렇게 묻어두고 지낸지 오래다. 이 책 <집착>도 아마 그런, 내 속의 무엇과 만나고 싶어서 마중물 삼아 샀던 책인 것 같다. 오래도록 책꽂이에 꽂혀 있다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집착은 관계의존증의 증상인 집착이다. 저자는 그걸 '사랑과 혼동하는 하는 집착', '사랑인줄 아는 집착'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관계의존의 여러 증상들의 사례를 제시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관계의존의 증상 유형들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순환하는 양상의 고리다. '끌림'으로 시작해서 '불안', '집착', '파국'으로 치닫고 그리고 봄이 오듯이 다시 새로운 인연을 만나 '끌림'의 단계로 들어간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당연히 나를 놓고 비교하게 됐다. 이 책에서 말하는 끌림 단계부터 찔리는 것이 많았다. 재밌는 것은 - 내 생각이 재밌었던 건지 이 책의 주장이 재밌는건지 헷갈린다. - 이 책은 첫눈에 반한다는 것에 대한 낭만을 믿지 않는다. 그 대상에 대해 뭔가 자세히 알려고하는 대신 '첫눈에 반했다. 너는 내 운명' 운운하는 것은 그 대상 때문이 아니라 내 속의 결핍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사례를 여러가지 제시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나 스스로 아주 낭만이 가득한 사랑의 서사에 꽤나 익숙해져 있었음을 새롭게 자각했다. 이 책은 그런 지극히 평범한 시선들, 하지만 많이들 왜곡되어 있는 시선들을 연이어 제시한다.
불안과 집착의 단계에서 관계를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 '통제하려는 시도'가 나타남을 지적하면서 이것은 사랑이 아님을 못박는다. 어떤 약물 중독이나 섹스 중독에 대한 주의보다 이 대목이 가장 찔렸던 부분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 배려라는 명목으로 여러가지 통제의 수단들을 관계에 동원했음을 돌아보게 된다. 술을 좋아하는 친구를 위해서 억지로 술자리를 만든다던가. 오히려 나에대한 이미지를 희석 혹은 왜곡하는 이런 과정들은 결국 서로의 관계를 지속시킬 수 없으며 그 다음 단계 파국으로 진행되게 된다.
관계의존증의 대부분의 원인은 자아 존중감이 부족한 탓이다. 이는 어릴 때 당연히 누리고 학습해야할 '부모로부터의 사랑'을 받지 못한 탓이 크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저자가 힘주어 강조하는 것은, 부모가 폭력을 썼다고 해서 반드시 그 자녀가 폭력성향의 부모가 된다는 것은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오히려 이것이 더 무서운 말일수도 있겠지만 어떤 폭력이든지 다양한 양상으로 다양한 형태로 표출된다고 한다.
이론과 증상에 대한 사례 분석, 치유 과정에 대한 사례 소개 등 주로 사례 위주로 구성되어 있는 책이라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책이다. 효용으로 치자면 지금 쓰고 있는 글의 윤후 캐릭터의 실마리를 이 책에서 얻었다. 뭔가 자신의 노력으로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오로지 하면서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는 사례는 이 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유형이기도 하다.
사랑과 집착을 혼동하지 않기 위해. 즉 관계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제시하는 10단계는 아래와 같다.
1. 자신을 용서하라.
2. 당신을 아프게 했던 이들을 용서하라.
3. 한때 관계 속에서 당신이 맡았던 역할을 벗어라.
4. 어떤 동반중독에 대해서는 진솔해져라.
5.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찾아라.
6. 지원 단체에 참여하라.
7. 절대적인 힘의 문을 두드려라.
8. 당신이 사용하는 통제 수단을 확인하라.
9. 자신에게 투자하라.
10. 자신을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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