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의 관점으로 본 '이야기'다.
인간은 왜 이야기에 끌리는가? 그야말로 잉여, 진화의 과정에서 종에게 어떤 편익도 주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예술, 그 중에서 특히 서사는 왜 태어나게 되었는가? 저자는 예술과 문화는 인류만이 가진 특징이며, 진화에서 벗어난, 적어도 진화의 관점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문화의 산물이라는 주장을 반박한다. 그러면서 예술과 서사야 말로 진화의 산물이며 이것들이 왜 발생했으며 어떤 기능을 하는지를 제시한다.
개체 보존의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의 습득과 판단, 예측에 있어서 이야기가 비용대비 탁월한 효용을 지녔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얼마전 읽은 <재미 이론>에서는 게임이 현실 세계의 시뮬레이션이라고 했는데, 이 책에서는 이야기야 말로 놀이(인지 놀이)이자 현실의 모사이자 가상훈련이라고 말한다. 또한 이야기 탄생의 주요한 배경으로 협력과 공감을 꼽는다. 인간이 어떤 종보다도 우월한 위상을 점할 수 있었던 것은 협력과 공감에 의해서 사회를 만들었기 때문이며, 그 과정에서 사회 유형을 제시하는 기능, 혹은 사회 규범을 강조하는 기능, 정보를 제시하는 기능과 '정보 이론(상대가 어떤 정보를 알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어떤 판단을 내리는가를 예측하는 이론)'을 습득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야기를 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관점은 텍스트의 여러 층위에 적용할 수 있다. 작가가 창작을 하는 단계에서 어떻게 청자들의 관심을 끌어들이는지, 즉 어떻게 인간 본유에 잠재된 욕망과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분석부터 특정 개인 창작자의 작품이 어떻게 변이 발전해 나가는지, 그리고 청자들은 그 작품에서 어떻게 의미를 유추해내는지 등등 다양한 층위에서 진화론의 관점을 취할 수 있다고 한다.
이야기가 사회를 설명하고 어떤 유형을 제시하며 거기에 따른 가치 판단을 내린다는 얘기는 창작자에게 유용한 지침이 된다. 물론 저자는 어떤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저자는 의미는 작품의 부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저자가 '이야기 하기' '이야기 듣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꼽는 것은 '관심'이다. 어떻게 하면 청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까? 저자는 이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의 문제다.
어찌보면 영화 쪽에서 장르의 관습과 스타일 이론, 수용미학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특정 시대 배경과 환경에 국한해 작품을 해석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인간 본유의 보편성이라는 관점을 더불어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진화에 대한 과학 사실과 문화 이론 등이 나와서 난해한 부분들이 꽤 있지만 다시 읽어볼만한 책이다. 특히 관점의 전환이 필요한 작가들에게는. 이론을 제시하고 후반에 <오디세이아>와 <호턴이 듣고 있어>를 분석하는 부분에서는 새로 <오디세이아>를 읽어야 겠다는 욕구마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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