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정 감독의 <신세계>를 봤다. <나는 악마를 보았다>의 각본을 쓴 사람이라기에 그의 전작들을 훑어 보게 되었다. 내년에는 이렇게 영화를 찾아 보게되는 경로를 그림으로 남겨 놔야겠다. 영화를 홍보하고 유통하는데 가장 유력한 지표가 될 것 같다.
<혈투>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한정된 공간에 고립된 사람들의 이야기. 저 예산이면서 상상력으로 승부하는 영화가 좋다. 이때의 상상력이 꼭 판타지나 공포류가 아니어도 좋다. 테렌스 멜릭의 <12명의 성난 사람들>이나 히치콕의 <로프>처럼 내면의 갈등에 집중해도 좋다.
어쩌면 나만의 취향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렇게 한정된 시공간의 제약을 안고 들어가는 영화는 영화를 만들려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깊은 내공의 초식과도 같은 의미가 아닐까? <베리드>를 보면서 무릎을 치게 되는 것도 다 그런게 아닐까?
어느 전장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패전. 도망친 두 명의 장교들은 폭설에 갇혀 이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진구는 이미 의식을 잃었고 박희순이 그 옆에 쓰러져 고백을 한다. 친구를 배신한 과거를. 그러나 운명의 장난--이 아니라 감독의 장난으로 이들은 어느 객잔을 발견하고 그리로 피한다. 마침 그곳에는 먼저 도망쳐온 병사가 있었고 이들 세 사람은 그야말로 운명 공동체가 된다.
과거의 일로 반목하는 두 장교 그리고 새파란 장교의 천대와 괄시를 견뎌야 하는 병사. 밖은 혹한이고 그 혹한을 뚫고 이들을 죽이기 위해 점점 다가오는 적국의 병사들이 있다. 그 사이에서 이들은 생존을 모색해야 한다.
영화를 본 지 꽤 돼서 그런가 자세한 내용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다지 재미가 없었던 기억이다. 지금 생각엔 아마도 그 세 사람 안에서 보여줘야할 이야기가 빈약했고 그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했던 것은 결국 외부의 힘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건 일종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다. 이야기를 시작한 감독은 끝내 캐릭터를 살려내지 못하고 감독의 전지전능한 손으로 끝을 내고 만다.
물론 그 외부의 힘을 끌어들인, 파국을 막지 못한 것은 두 장교의 응어리진 갈등, 불관용, 편협함 때문이고, 병사의 계급성, 가족애 코드가 관객의 공감을 노리지만 역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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