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미는 이야기꾼이다. 그의 부모가 에이미를 소재로 성장소설을 썼던 것처럼, 에이미는 자신의 결혼으로 멈춰버린 소설을 마무리지으려고 한다. 단 그의 부모가 지은 소설과 다른 것이 있다면 비극으로 끝난다는 점이다. 에이미는 자살까지 생각하고 있다. 동화 속에 살던 자신의 삶을 철저하게 나락으로 떨어뜨린 남편을 응징할 수만 있다면, 남편을 자신을 죽인 살인범으로 몰 수 있다면 그 마지막 물증으로 자신의 시체를 내놓을 생각이다. 에이미가 증거로 남겨놓은 거짓 일기장에 예언한 대로. 그러나 에이미의 비극은 완성되지 못한다. 작가들이 흔히 겪는 일인데, 주인공이 제 뜻대로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궁지에 몰린 남편이 인터뷰에 나와서 대중의 호응을 얻는 모습을 보고 에이미는 자신의 소설을 해피엔딩으로 바꾸려고 한다.
갑작스런 에이미의 변심 때문에 극은 더욱 흥미롭게 진행되지만, 에이미의 이런 전환보다 더 재밌었던 것은 그 앞 장면 - 모텔에 숨어 지내던 에이미가 강도를 만나는 장면이다. 완벽한 시나리오로 한 남자를 살인범으로 몰 능력을 가진 여자가, 정작 자신의 삶의 영역에서 한 발짝을 나서자마자 눈뜨고 코베이는 사건을 겪은 셈이다. 사실 이 장면은 극의 전개에 꼭 필요하지는 않다. 에이미가 모텔에서 남편 닉의 인터뷰를 본 후에 돌아갈 계획을 짜고 희생양을 구한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 그럼에도 이 장면이 들어간 것은 에이미의 서사의 한계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에이미가 구축한 서사의 세계가 얼마나 협소하고 옹색한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그 서사의 밖에서 에이미는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여기에 에이미나 닉의 아이러니가 있다. 그렇게 취약한 서사, 얇팍한 거짓말인데도 남편 닉은 그 서사 안에서 해피엔딩을 가장하는 삶을 선택한다. 관객들이 보기에는 여자의 서사를 위협할 만한 요소가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는데도 말이다. 하다못해 귀환 후 메스컴에서 주가를 높이고 있는 에이미의 모습을, 모텔 강도가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에이미를 의심하는 경찰은 왜 그리 무력한지. 이 영화의 결말이 그렇게 위태하게 보이는 것은 에이미가 언제고 닉의 목을 커터로 그을지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의지하고 살아가는 서사의 취약성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영화의 시작과 똑같은 에이미의 단독 샷이 나온다. 다만 이번엔 관객을 똑바로 쳐다본다. 마치 너의 서사는 얼마나 견고한지 묻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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