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

클로버필드 10번지

자카르타 2016. 5. 12. 18:25




야바위꾼은 긴 고무줄과 짧은 고무줄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고 해놓고 짧은 고무줄의 양 끝을 선택지로 내민다. 어느 것을 골라도 결과는 같다. 종종 이런 야바위가 생각나게 하는 영화들이 있다. 비아냥대는 건 아니고. 영화의 주제가 야바위의 메커니즘을 그리고 있다는 얘기다. 합리와 광기 사이에서 관객들은 어떤 것이 옳은 선택인지 고민하지만 결국 그 어느 것도 해답일 수 없는 상황. <미스트>가 그랬고 <클로버필드 10번지>가 그렇다. 


<미스트>에서 주인공이 광신도의 예언을 거슬러 밖으로 탈출을 하다가 결국 가족을 몰살하고 혼자 살아남는다. 그러나 주인공의 결론을 섣부른 행동이라든가, 이성에 대한 맹신이라고 손가락질 할 수는 없다. 광신도의 존재 때문에 그의 선택이 합리나 이성에 따른 행동처럼 규정되는 면이 있지만 그가 보기에 (또는 관객이 느끼기에) 보이지 않는 안갯속의 생존률은 50대 50이다. 군인들에 의해 구출된 광신도의 모습이 영화의 마지막 방점을 찍는다고 해도 그 사실 때문에 주인공의 선택을 조롱하는 것은 억지스럽다. 이 억지스러운 구도 속에서 최소한 관객들이 합의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을 둘러싼 안갯속 같은 상황 뿐이다. 


이런 안갯속 같은 상황은 <클로버필드 10번지>에서도 반복된다. 교통사고 뒤에 깨어보니 벙커에 잡혀 있고, 밖은 화학전이 벌어졌다고 하고, 벙커의 주인은 왠지 사이코 같고. <미스트>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영화는 한 걸음 플롯을 진행시켜서 화학전이 벌어진 밖의 상황을 주인공과 관객들에게 확인시킨다. 재밌는 것은 외부의 위험이 실제한다는 것을 까발리고 나서다. 영화는 안개를 걷고 나서 질문의 본질에 다가선다. 외부의 위험과 내부의 위험 두 가지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광기와 합리에 따른 추리 사이의 갈등이 아니라, 어떤 것이 더 나쁠지 모르는 상황 사이에서의 고민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갈등은 그다지 명암이 뚜렷하지 않다. 얼핏 보면 주인공이 굳이 밖으로 탈출을 하려고 하는지 분명하지가 않다. (사실 따지고 보면 탈출 계획의 순서도 설득력 없다. 이건 스포일러라) 그러나 인간은 바늘 끝에 올려진 구슬처럼 아주 미세하게 흐트러진 불균형때문에 움직인다. 의심으로 시작된 행동들은 점점 속도를 더하면서 자연스럽게 이 개연성 없는 탈출을 부추긴다. 영리한 시나리오다. 또 속았구나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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