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

아가씨

자카르타 2016. 6. 8. 20:14





- <아가씨> 봤다며? 어땠어? 

- 응 재밌게 봤어. 

- 그래? 웬 일이래? 박찬욱 원래 안 좋아했잖아. 

- 감독 안 좋아하는 거랑은 별개지. 그리고 박찬욱 안 좋아하는 거 아니야. <올드보이>는 그 해 최고 영화라고 생각한다고. 그 해 나온 <매트릭스>보다 더 나은 영화라고 생각해. 

- 그래도 그 다음 작품은 영 아니라며. 

- 그야 그렇지. <사이버그...> <박쥐> <친절한 금자씨>는 영 아니었다고 봐. 

- 뭐 취향 차이니까. 암튼 <아가씨>는 좋았다는 거지. 뭐가 좋았는데? 

- 일단 드라마 버전에서 버릴 것은 버리고 단도직입할 것들을 추려낸 것이 좋았지. 솜씨 좋은 외과의사를 보는 것 같달까? 

- 많이 달라졌나? 원작이랑? 

- 드라마를 봤기 때문에 원작이라고는 할 수 없지. 하지만 드라마와 비교했을 때 많은 부분들이 명쾌해졌어. 가령 드라마에 있던 신분이 뒤바뀌었다는 설정, 하녀의 의붓엄마가 계략을 주도했다는 설정을 뺀 것은 탁월한 선택이라고 봐. 

- 하긴 드라마에서 의붓엄마와 가짜 백작이 공모한 게 드러나는 장면에서는 좀 짜증이 나더라. 그리고 그 다음에 신분이 뒤바뀌었고 의붓엄마의 친딸이 아가씨였다는 것도 사족 같고. 하지만 그게 의도한 중요한 지점이 있었을 텐데. 

- 그렇긴 하지. 계급성이 뒤바뀌면서 서로 동등한 조건에서 바라볼 수 있었을 테니까. 아마 추측컨데 소설은 그 부분에서 아가씨의 심리를 자세히 묘사하면서 드라마의 어색함을 줄여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 그럼에도 러닝타임의 제약을 받는 영상물에서는 다루기 힘든 감정이었을 거 같아. 아마 미니 시리즈로 만들었다면 또 가능하지 않았을까? 

- 그러면 또 막장 드라마네 소리 나오겠지. 

- 그런 요소가 있지. 드라마에서 마지막에 가짜 백작이 아가씨의 칼에 찔려 죽는 것도 사고처럼 그리고 있잖아. 그런 우연과 갑작스럽게 의붓엄마가 희생을 하는 것이 영 어색하게 느껴졌었거든. 그런가 하면 박찬욱의 <아가씨>에서는 갈등의 이해당사자를 제한하고 그들의 갈등을 끝까지 중심에 두고 끌고 간 셈이잖아. 분량은 영화 <아가씨>가 두 시간 30분인가, 하고 드라마 <핑거스미스>가 세 시간인 것에 비해 이야기는 <아가씨>가 훨씬 간단하거든. 

- 하지만 이런 감상은 <핑거스미스>를 본 사람의 이야기라는 거지. 이 드라마를 보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봤을까? 영 이상하다는 감상이 있던데. 

- 나도 그게 좀 의아하긴 해. 드라마에서 아주 자유로울 수 없어서 일반 관객들이 보는 시선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싶고. 

- 너무 필요없이 야한 장면들이 많다는 얘기가 있더라고. 

- 아, 맞다. 나도 영화보고 나오는데 한 할머니 한 분이 세상에 이런 영화가 어딨냐고 혀를 차시더라고. 배우들은 험한 역을 했으니 돈을 많이 받아야 쓰겠다면서. 

- 우리나라 60대 이상 노인들 중 80% 이상이 동성애를 터부시한다니 그럴만도 하지. 

- 그러니 일단 동성애이기 때문에 불편하다는 의견은 무시하기로 하고, 그저 야한 장면만 생각해 보자면... 글쎄 난 그리 과잉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 그래? 

- 응, 마지막 엔딩에서도 굳이 정사씬을 넣었어야 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 앞에 아가씨와 하녀가 첫날밤 강습을 하면서 정사를 벌이는 장면은 적절했다고 생각해. 이 장면은 두 번 반복되는데, 처음에는 하녀의 관점에서 그리 적나라하게 묘사되지는 않거든. 그 다음 아가씨의 관점에서 회고될 때는 상당히 적나라하게 길게 묘사되는데, 앞에선 하녀가 주도한 것이, 뒤에선 아가씨가 하녀를 능가한 것으로 나오거든. 사실 이 모든 계략을 주도하는 것이 아가씨고 보면 아가씨의 관점에서 진행되는 장면들에서 이렇게 묘사되는 것은 적절했다고 생각해. 더구나 책에 갇혀 있던 성인식이 드디어 표출되는 장면이니 더더욱 표현 수위가 높을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 '책에 갇혀 있던 성인식?' 

- 아, 드라마에선 그게 그리 강조되지 않는데 영화에서는 아가씨가 낭독하는 책이 죄다 그런 포르노물로 나와. 미혼의 여성이 사내들 앞에서 그런 야한 책을 읽고 있으니 분위기가 어떻겠어? 드라마하고는 달리 착취의 관계, 종속의 관계가 더욱 드러나고 철창 안의 원숭이 같은 느낌을 물씬 주는 거지. 드라마에서는 그런 느낌은 없었잖아. 점잖은 신사들에게 귀애받는 숙녀의 이미지였지. 그런 것도 박찬욱 버전의 탁월한 지점인 듯 싶어. 물론 원작 소설에 그렇게 묘사되어 있었겠고, 드라마는 공중파라는 한계 때문에 적나라하게 묘사를 못한 것이겠지만. 암튼 그렇게 억압되고 변형되어 착취되는 성인식을, 본격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의미에서 그 정사 장면들은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고 봐. 

- 마지막에 하녀와 아가씨가 같이 공모하는 것으로 바뀌었다며? 너무 급작스럽지는 않아? 

- 난 그걸 최선의 봉합이라고 보는 거지. 

- 완전 <디아볼릭>이 돼 버린 게 아니고. 

- <디아볼릭>도 최고의 플롯이고. 오히려 원작에서 하녀의 의붓엄마가 모든 음모의 배후였다는 것이 너무 군더더기 같지. 이게 깔끔하다고 생각해. 그리고 이 깔끔한 정리가 어거지스럽지 않다는 거지. 여러 섬세한 연출이 있어. 가령 이런 거야. 드라마에서는 도서관의 책을 찢는 걸 아가씨가 주도하거든. 그런데 영화에서는 하녀가 주도를 해. 하녀의 정서는 분노야. 사랑하는 연인을 그동안 혹사한 데 대한 분노. 이건 드라마에선 찾을 수가 없는 감정이거든. 하녀의 이 감정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도색 그림을 이용했던 것도 있고. 난 이 장면으로 원작이 가졌던 계급의 전복을 충분히 대체했다고 생각해. 이때부터는 계략은 아가씨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둘이 함께 주도하는 것이 되어 버리지. 그래서 드라마와는 달리 바퀴벌레가 든 주먹밥을 먹고도 흔쾌히 웃을 수 있는 거 일테고. 

- 꽤 재밌게 본 모양이네. 이래저래 다 좋다는 거 보니. 

- 아무래도 박찬욱은 자기 원작보다는 각색작이 더 소질이 있는 게 아닌가 몰라. 

- 에이 그럴 리가. 그렇게 치면 <박쥐>는? 그건 테레즈 라캥이 원작이라며. 

- 원작에서 너무 나갔지. 그저 영감만 받은 정도랄까? 

- 아 맞다. 오늘 어디 기사 헤드라인 보니 황진미란 평론가가 '왜 일제시대였냐'는 투로 얘기하던데. 그건 어떻게 생각해? 

- 그 사람 평론은 안 읽은지 꽤 돼서 나도 슬쩍 지나가면서 봤는데. 그 질문의 답은 이런 게 돼야 하지 않을까? '왜 일제시대면 안 되나?' 작품이란 게 말야. 연역과 논리로 선택하는 게 아니잖아. 설정이 어떤 상상력의 여지를 만들어주면 그걸로 족한 거고. 뭐 내 생각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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