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살인사건이 여혐 살인 사건으로 인식되면서, 그 반대로 남혐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있었다. 누군가 그 우려의 근거로 <쥬토피아>를 들먹인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고, 페북에서 거기에 대한 비난, 조롱의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때 미처 <쥬토피아>를 보지 못한 터라 글을 보지도 않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지금은 글쎄... 그런 논조도 가능하겠다 싶다.
나 역시 처음 강남역 살인사건을 여혐 살인으로 규정하는 데에 거부감이 있었다. 그 후에 다양한 목소리를 들으며 이건 누가 규정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들이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걸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여전히 남성인 내가 느끼지 못하고 이해 못할 부분도 있으리란 것도 있겠다. <쥬토피아>를 근거로 남혐을 우려하는 논조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실제하는 '차별과 불평등의 구조'와 '오해에서 비롯된 혐의'는 구별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작품을 해석하고 이를 사회에 투사하는 것과 행동 윤리의 교훈으로 삼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다. 교훈은 스스로 삼으면 되는 일이다. 그럼에도 해석의 여지는 열어놓고 싶다.
최근 마사 너스바움의 <혐오와 수치심>을 읽고 있다. 혐오에 대한 논쟁의 심지를 돋우며, 저자는 대중과 법이 정의라는 이름으로 수행하는 혐오와 증오 범죄의 동인이 되는 혐오가 과연 다른 것인지부터 따진다. 많은 이들이 상충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 두 가지는, 그러나 저자의 논지에 따르면 민주주의의 기반인 개인의 존엄과 자유에 대한 우리 사회의 합의를 위협할 수 있다. 차별의 구조에 저항하기 위해 연대가 필요한 이들에게 '개인'을 강조하는 것은 명백한 기만이며 자칫 반동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양성의 가능성도 열어두어야 겠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꽤나 묵직한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웃음이 빵빵 터지게 만든다. 전형성에 의지하면서도 변주를 통해 유일무이한 캐릭터들을 만든다. 에피소드와 소재들을 알뜰 살뜰하게 이용해 먹는다. 등등 서사 창작 면에서도 두고두고 복기할 만한 작품이다. 단연 나무늘보는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