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이앵글>의 감독 크리스토퍼 스미스의 2010년 작.
기대를 너무 했나? 시간을 초월한 죄 된 본성과 그에 따른 죄책감을 탁월하게 그려낸 전작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리고 뭘 얘기하려는지도 잘 모르겠다.
흑사병을 신의 저주라고 믿는 사람들과는 달리 앳된 수도승 오스몬드는 그럴 리가 없다고 믿는다. 그의 생각에 인간은 그렇게 참혹하게 죽을 만큼 죄를 짓지 않았다. 무고한 자의 고난에 대한 회의와 저항은 저기 욥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런 회의를 가진 자들은 신의 본성에 호소한다. '내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상관하시나이까?' 하찮은 인간의 사소한 죄에 일희일비하며 미주알 고주알 반응들을 내쏟는 신은, 그들이 믿는 신이 아니다. 교회에 흔히 들려주는 얘기와는 달리, 욥이 신을 원망했지만 결국 신이 '욥은 정당하다'고 판결을 내린 이유도, 그의 신관이 올바랐기 때문이다.
오스몬드가 올바른 신관을 가졌다고는 하지만 그가 합리와 이성을 신앙의 한축으로 삼는 인간은 아니다. 이 차이가 욥과 달리 그가 파국을 맞게 되는 이유가 된다. 흑사병이 신의 저주가 아니라는 것을, 그는 안 것이 아니라 믿었다. 정작 흑사병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그는 모른다. 이 무지로 인해 그는 마녀에게 미혹당하고, 결국 사랑하는 연인을 스스로 죽이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그리고 오스몬드는, 그가 불신했던 마녀 사냥꾼이 되어 복수에 남은 생을 바친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마녀가 마녀 사냥꾼을 고문하는 장면을 보면 두 집단 모두 열렬한 신앙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신의 이름을 버리라고 강요하는 집단이나, 신의 이름을 버릴 수 없다는 집단 모두 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다. 이런 두 집단이 결국 양쪽 모두 몰살을 당하게 되는 파국을 통해서 감독이 하려는 얘기가 뭐였을까? 이성이 부재하는 중세의 암흑을 그리려는 거였나?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얘기다. 차라리 오스몬드에게 중재의 역할을 끝까지 맡겼더라면, 비록 두 집단이 파국으로 끝나더라도 미완에 그친 오스몬드의 노력에 공감하고 긴장감을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