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를 쓰다보면 '왜'라는 질문을 많이 듣게 된다. 쓰고보니 비단 시나리오만은 아닌 것 같다. 기획하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왜'라는 질문은 꼭 듣게 되는 것 같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쉽지 않다. 서사가 인과관계의 맥락이라는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이기는 하지만, 모든 것들이 인과관계로 촘촘하게 엮여 있는 서사는 빡빡한 미숫가루 같아서 맛이 없거나 사래들리기 딱 좋다.
그리고 대부분의 '왜'냐는 질문은 그 기저에 질문자의 취향이 아니다,는 의도가 깔려 있기에 (내 주장을 관철시킬 만한) 맞춤한 대답은 애초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대체 스타일에 이유가 있을 리가 있나? 구구절절한 이유를 단 스타일 만큼이나 초라한 것이 또 어디 있으려고.
영화과 때를 돌아보면 어설프게 이런 '왜'라는 질문을 서로에게 던졌던 것 같다. 그리고 적어도 나는 그 '왜'라는 질문에 쌈빡한 대답을 만들기 위해 본질이 아닌 것들을 붙들고 있었던 것도 같고.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자기 스타일을 찾아가는 단계에서는 이 '왜'라는 질문은 이제 그만 던졌으면 좋겠다. 그런 질문에 창의가 숨이 막히다 보면 이런 작품이 나오게 되니까.
<사냥> 이름부터 노선이 분명한 영화다. 쫓는 자 쫓기는 자가 나올 것 같고. 마지막에는 그 위상이 바뀌는 반전이 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가능하다. 중요한 건 그 추격이 얼마나 긴박하게 흐르는지 여부다.
그러나 이 영화는 격랑을 이뤄야 할 흐름이, 보에 막인 사대강처럼 뚝뚝 끊기기 일쑤다. 왜 안성기가 그렇게 산에 오르게 되었냐면.. 하고 과거 장면. 왜 안성기가 팔푼이를 목숨걸고 지키려고 하냐면.. 하고 과거 장면. 안성기가 어떻게 파릇파릇한 젊은 놈들 대여섯을 물리칠 수 있냐면.. 하고 과거 장면.
도대체 이 긴박한 순간에 그런 질문을 던지는 놈이 감독 외에 또 있을까? 그저 인지상정으로 넘어갈 것들을 감독인지 작가인지는 미주알고주알 설명하면서 넘어간다. 그것도 쉽게 수긍하기 어려운 사건들을 배열하면서.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스핀 오프를 만들어도 좋은 얘기들을 짧은 플래쉬 백으로 처리해 나간다.
장르도 프레임 싸움인 것 같다. 서사의 겉표면에서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왜'라는 질문에 꼼꼼히 대응하다보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직조해 나가는 이야기가 되고 만다. 그러나 가볍게 그 따위 질문쯤 무시해 나간다면 그 다음은 거칠 것이 없어진다. 요즘 방송되는 W에서 '왜' '어떻게' 만화 속 캐릭터와 인물이 만날 수 있는지? 얘들은 왜 이렇게 감정에 끌리는지 설명하려고 했다면 이야기가 전개될 수 있었을까? 그런 질문 쯤 쉽게 무시하자고 장르에 편승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