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그런 상상을 한 적 있어. 일본 경찰로 살았지만, 실은 독립군을 도왔던 거지. 그런데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죽고 해방을 맞아. 그가 일본 앞잡이였다는 사실만 가지고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면 어떨까?
그때 이런 상상을 하게 된 계기가, 어느 누가 자신의 친일 행적을 이런 식으로 부인하던 기사를 봤기 때문일 거야.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어. 설사 그가 숨은 독립군이었다 해도, 개인의 고난은 물론이고 집안이 모두 풍비박산 난 현장 요원들에 비해 안온한 삶을 살았다면 그 비난은 감내해야 한다고.
참 어리숙한 생각이었던 것 같아. 비난과 보상이란 게 본질이 아닌데다가, 우리 역사에서는 억울하게는 고사하고 제대로 단죄한 경험도 없잖아. 그리고 현실이나 역사에 남겨진 자취들이 그렇게 쉽게 지워지거나 잊히지 않을 거고. 단죄와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역사를 붙들고 살피는 일이 당연히 계속되어야 하는 거고. 오히려 진짜 고민할 주제는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것처럼 경계에 섰던 사람들인 것 같아.
훗날 역사는 이정출 같은 사람들을 뭐라고 판단할까? 과거 통역으로 의열단을 도왔던 때의 그, 일본 경시청의 소속으로 독립군을 잡아들이던 그, 의열단의 경성 잠입을 돕던 그, 의열단 단원들을 잡아들이고 고문하던 그, 그리고 의열단의 미완의 미션을 수행하는 그를.
결과가 선하니 그의 인생 전체에 면죄부를 줘야할까? 쉬운 답은 있겠지. 그의 속죄 여부. 하지만 그가 의열단이 경성에 들어오는 데까지만 기여하고, 그 뒤에 다시 일본 경찰의 삶으로 온전히 복귀했다면 어떨까? 역시 우리는 쉬운 답을 꺼낼 수밖에 없을까? 죄에는 죗값을 묻고, 공로는 참작한다?
쉬운 답이 있겠지만, 어제 너무나 쉽게 선과 악을 재단하던 사람을 만난 뒤라 더더욱 그 쉬운 답이 개운치 않다. 난 이 영화에서 감독이 이룬 가장 큰 성취는 의열단 단장이 이정출을 회심시키는 시퀀스라고 생각해. 이정출이란 악인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회심에 어떻게 승부수를 둘 수 있었을까? 다른 당 지지자를 회심시키는 것은 고사하고 같은 당 다른 후보 지지자하고도 원수를 만드는 세상인데 말야. 우리 삶에 어느 순간에는 판단 보류를 그만두고 행동해야할 때가 있기도 하겠지. 영화의 마지막 조선 총독부에 폭탄을 싣고 가는 것처럼 말야. 하지만 의열단 단장이 조 뭐시기를 응징하는 것을 가장 최후로 미뤄둔 것처럼 너무 조급하거나 섣불리 재단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사람에 대해서는 말야.
사회를 변화시키는 상상력이란 것은 이런 거라고 생각해. 한 인생의 변화를 상상하지 못하면서 사회의 변화를 상상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겠고. 그 당연한 지점들을 건드린 것만으로도 장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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