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민을 의롭게 만들기 위해서 만든 허들은 너무 낮았다. 원자로를 식히기 위해서 해수를 쓰게 하는 정도로 김명민은 쉽게 대통령으로서의 권위를 회복한다. 김기춘을 연상케 하는 실세 실장을 등장시키면서까지 현실을 꼬집으려고 하지만, 이제는 5천만이 익히 아는 사실을 더듬는 정도다. 따끔하지 않다. 간지럽다. 오히려 재난을 만든 구조에 대한 설명이 현실에 빗대어 은근슬쩍 넘어가는 인상이다. 저 정도의 재난이 와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는 자조가 서사를 압도한다. 현실의 팩트가 작가의 상상력을 초월한 시대니 이야기가 물러터질 수밖에.
그럼에도 혹은 그래서, 가족이야기와 희생의 이야기는 눈물샘을 자극한다. 김남길이 왜 떠나려하는지, 얼마나 떠나고 싶은지, 그 모친은 왜 떠나지 못하게 하는지, 게다가 왜 사지에 독자를 집어넣었는지, 왜 김남길은 다시 친구들에게로 돌아갔는지. 그냥 대충 그런가보다 하고 볼뿐이지만, ‘그럼에도’ 관객이 참사의 목격자로 호출되는 순간, 요 몇 년 사이 쌓인 트라우마를 건드리고, ‘그래서’ 영화는 끝내 관객의 눈물을 끄집어내고 만다.
재난이 일상이 된 세상에서 영화는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할까? 얕게 감추고 있는 슬픔을 건드리는 일은 너무 쉽고 안일해 보인다. 물론 그 재능과 진정성을 모두 부인할 수는 없겠지만…. 저기 해상 몇 킬로미터 밖 진원이 아니라 우리 도시, 우리 직장, 우리 집을 진원으로 삼고 있는 지금의 만연한 재난에, 그 재난의 스펙타클에 압도당한 지금 무엇을 이야기해야할까? 서사의 중요한 부분을 현실에 기대고 있는 <판도라>는 어쩌면 서사라기 보다는 현실에서 억누른 비명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더 쉽게 공명하는지도.
영화를 보고 며칠 뒤에 한겨레 신문인가에서, 핵폐기물 운반 차랑이 사십 몇 톤인데, 국내 고속도로 내구력 한계가 삼십 몇 톤이라는 기사를 봤다. 영화는 끝이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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