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자카르타 2017. 1. 15. 22:57




십여 년 어머니와 떨어져 살다가 다시 모시게 된 후 처음 이사 간 집은 엉망이었다. 도배하던 사장님 부부는 도처에 손가락만한 바퀴벌레가 우글거린다며 질겁했고, 반지하라 거실보다 50센티는 높았던 화장실은 벽 두 개가 곰팡이로 시커멨다. 어머니를 위해 황토 두 부대를 사다가 화장실 사방 벽과 천장에 발랐다. 그때 목과 허리에 뻐근하게 올라왔던 가난의 기억이, 케이티가 화장실 청소를 하다가 타일이 떨어지는 장면에서 울컥 밀려왔다.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된 지 오래,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라는 말은 더 이상 어떤 마취효과도 없고, 가난이 주는 통각은 고스란히 삶의 곳곳을 파고든다. ‘늪에 빠진 것 같아요’ 케이티가 급식소에서 허겁지겁 통조림을 뜯어 먹다 내뱉은 말처럼, 가난은 오로지 개인의 책임이 되어 손쓸 수 없이 무너져 내린다. 결국 케이티가 몸을 팔게 된 것처럼.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자본주의 사회가 어떻게 가난을 정죄하고, 알량한 복지제도가 어떻게 자존감을 포기하라 강요하는지 보여준다. 가난을 성실하게 증명하고, 무능을 속죄해야만 하는 사회. 그 낙인에 순응할 것인지, 자존을 지킬 것인지의 갈림길에서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는 매번 후자를 선택한다. 그 역진의 몸부림 중 가장 큰 울림을 주는 것은 그가 락카통을 경비원의 면상에 들이대는 장면이 아니라, 그가 궁한 상황 속에서 누군가의 이웃이 되고자 했던 많은 장면들이다. 과연 무능하고 무책임한 것은 ‘잡 플러스’의 관료들일까? 다니엘일까? 

죽지 말고 숨만 쉬라고 강요하는, 굴종을 강요하는 복지제도의 가파른 문턱에서 다니엘은 결국 쓰러지지만 그는 부요한 사람이다. 켄 로치처럼 빼어난 연출력으로 이런 이야기에 천착한 감독이 있다는 건, 우리 세대의 복이다.

'리뷰 >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비한 동물사전  (0) 2017.01.28
판도라  (0) 2017.01.27
밀정  (0) 2017.01.09
The Shallows  (0) 2016.10.02
사냥  (0) 2016.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