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지/다시 읽는 성경

민수기 10장

자카르타 2017. 5. 25. 10:49


민수기 10장. 


나팔이 등장한다. 은으로 만든 나팔 신호를 세 가지로 나눠 규정하고 있다. 군대서 나팔수를 했다. 도미솔도, 옥타브 도미솔도와 시까지 9개 음을 가지고 다양한 신호를 만든다. 그 유명한 취침 나팔은 물론이고 기상, 적기 출현, 진격 등. 그에 비하면 여기 나온 신호들은 조악하다. 그저 나팔을 하나 불었는지, 두 개 불었는지로 나뉘고 다양한 상황 맥락에 따른 해석이 필요하다. 같은 '크게 부는 나팔'도 전시에 부느냐, 평시에 부느냐에 따라 의미가 다르다. 의미가 다르다고는 했지만 나팔 소리는 '움직여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리고 제물을 드릴 때도 나팔을 불도록 명하고 있다. 

나팔을 불면 신이 임재하시겠다는 약속을 덧붙인다. 여기서 의문. 왜 신은 나팔이라는 신호가 필요한 걸까? 단지 기도만으로는 부족한 걸까? 누군가는 구약 시대의 신을 만나는 방식과 신약 시대의 신을 만나는 방식으로 구분하겠지만 나는 종교적 행위의 외시와 함축의 관계로 보고 싶다. 

나팔이라는 기호는 일차적으로는 신을 부르는(외시) 기능을 하겠지만 그것이 내포하는 것은 (난 이 기능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데) 신이 인간의 신호에 즉각 반응한다, 혹은 우리가 필요할 때 신을 부를 도구가 있다는 함축이다. 이 함축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신민으로 교화시키고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종교의 기능은 이 외시와 함축의 층위에서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 자구에 함몰되서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이 자구들에 집착하는 것은 이 함축을 간과하는 셈이다. 오늘 이 함축 - 신민 공동체를 만들려는 의지는 제대로 구현되고 있을까? 나는 상당한 오작동을 일으키고 있다고 본다. 그때문에 초래되는 부작용도 상당하고. 

여기 28절부터 30절은 좀 황당하다. 여기에 호밥이라는 사람에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과 동행하자며 권하는 장면이 나온다. 모세의 장인의 아들이니 처남일 텐데. 이 사람이 광야 생존 기술의 전문가였던 모양이다. 성경에는 그저 광야에서 장막치는 데 능하다고 나오는데 그것만은 아니었을 게다. 모세가 장인 가족을 만난 것이 광야였고, 이스라엘 백성은 400년 동안 농경사회인 이집트에서 살았으니 호밥의 진가는 아마 탐이 났을 거다. 

흥미로운 것은 모세가 호밥에게 동행을 권하는 첫 구절에서는 반말로 하는데, 호밥이 거절하자 그 다음 구절에서는 존대말로 바뀐다는 거다. 내가 잘 못 읽었나 해서 몇 번을 확인했지만 확실하다. 급 머리를 조아리는 모세의 모습이 우습다. 이 헤드 헌팅이 어떻게 끝났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민수기 9장에서는 그결과는 소개하지 않고 그냥 넘어간다. 다음 성경 구절에서 호밥이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면 아마 캐스팅에 실패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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