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지/다시 읽는 성경

민수기 22장

자카르타 2017. 6. 11. 13:07


민수기 22장. 

그 유명한 여리고 성 함락 사건 직전인 것 같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에 쳐들어가기 전에 모압 평지에서 진을 쳤을 때 얘기다. 

겁을 먹은 모압 왕이 발람이라는 무당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해달라고 하지만, 발람은 여호와의 계시를 받고 이를 거부한다는 얘기다. 결국 모압 왕이 사람을 보내 모압 왕에게 가야할 상황에 처한다. 

재밌는 건. 여호와가 계시로 모압왕에게 가라고 해놓고 사자를 보내 발람을 죽이려고 하는 부분이다. 성경을 보면 같은 장면에서 다른 전승을 모아 놓은 것 같은 곳들이 이렇게 종종 보인다. 아마 모압 왕에게 발람을 보내는 과정에 대한 두 가지 버전을 이렇게 모아 놓은 것일 게다. 

흥미로운 건 모압 왕 발락이나 무당 혹은 선지자 발람이나 모두 단일신 여호와의 존재와 능력을 인정한다는 점이다. 대단한 믿음이다. 믿음이란 뭘까 생각해 본다. 우선 1차적으로 어떤 팩트에 대한 인지가 있을 수 있겠다. 

역설이지만 이 인지는 팩트의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자신의 믿음이 팩트라고 인지하는 것이다. 아무튼 이 팩트에 대한 인지이든, 인지로 인한 팩트의 추정이든 이 근방의 사람들이 모두 이런 믿음을 공유했다는 것은 흥미롭다. 

이 앞에 여호와가 이삭과 야곱에게 나타날 때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했던 것과는 다르다. 아니 지금 보면 이런 호칭이야말로 모든 이의 신에 대한 인위적인 구별이지 싶다. 이제까지는 당신은 모든 이의 신이었으나 이제는 나와 우리 집안의 신입니다, 라는 고백. 

믿음의 두번째로는 가치의 영역이 개입한다. 
모압 왕 발락이나 발람 모두 신의 존재를 믿고, 심지어는 신과 소통할 수 있는 영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떤 것이 옳은 일인지를 구별하는 가치관은 없다. 결국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바람조차도 전적으로 신의 명령에 움직이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가나안 정착 과정이 도덕이나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큰 원인이겠지만 전반적으로 이들의 믿음에서 도덕과 윤리는 찾아볼 수 없다. 현재의 많은 기독교인이 인권의 문제에 눈을 돌리면서 믿음으로 핑계 혹은 근거를 삼지만 그 일차적인 믿음에만 머물면 언제든지 모압 왕처럼 신의 대적자가 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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