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밍을 잘 못 맞추는 편이다. 천만에 하나 보태기 싫어 천만 영화 거르듯이 배알이 꼬여서인 경우도 있고, 세월호 관련 책들처럼 후루룩 냉면 먹듯이 먹을 수가 없어서 (였다고 기억하는데) 쌓아놓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 밖에도 이런 저런 이유로 남들 다 씹고 맛보고 즐길 때를 놓치고 뒷북을 치거나 아예 생략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을 읽은 건 조금은 뜬금없는 일이다.
왜 주문했을까? 아마 욕을 하더라도 자세히 알고 욕을 하자는 생각이었을 것 같다. 그리고 도대체 예산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지는 확인해 보고 싶은 것도 있었을 게다. 꼴랑 천만 원대 보조금 사업도 사람 속을 뒤집어 놓던 시스템이 어떻게…. 뭐 그런 생각이었을 것 같다.
결론은 어느 것도 만족스럽지 않다. 보도자료와 예산안 분석 등을 통해 저들이 해먹은 것들을 일목요연하게 드러내놓고 있지만 이 말이 안되는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여전하다. 책을 읽으면 박근혜와 최순실 일당이 무주공산을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보인다. 저항이나 장애의 흔적을 거의 볼 수가 없다. 내 기억에 유일한 것은 융합 산업 관련해 반대 행보를 보이다가 아프리카 내전 지역으로 좌천되었다는 국정원 직원 정도다. 아, 그와 함께 두 달 만에 잘린 기관장도 있긴 하네.
정작 독자인 내가 궁금했던 것은 이 책의 가장 마지막 장 - 어떻게 하면 이 허술한 체제를 바꿀 수 있을지였던 것 같다. 저자는 예산 도둑을 부추기는 다섯 가지 ‘깨진 유리창’을 소개한다. 국회, 사정기관, 관료, 재벌, 시민. 이들 영역에서 예산 도둑들을 막을 방법들을 제시하는데, 가장 눈에 띤 것은 국회 예결위의 옴부즈맨 제도와 납세자 소송 권한이다. 이 정부에서는 이런 제도가 도입될 수 있을까? 정권 교체 전에 쓰인 책이라 현재진행형인 예산 누수 상황을 이 책 곳곳에서 분개하고 있는데 그것들은 다시 되돌릴 수 있을까? 법정에서 드러난 사실관계를 포함해서 꼭 그 뒷얘기들을 다루는 책이 나온다면 좋겠다.
도둑질이 하도 어마어마해서 나열식 내용들 읽다보니 중간엔 수천 억원이 그냥 무감해 진다. 마지막 장의 처방이 앞의 진단과 함께 부문별로 제시되었다면 어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