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참 안 읽고 살았다. 대신 사람책 읽고, 동네를 읽지 않았나, 자위도 하지만.
여름께 읽기 시작해 에필로그 부분 남겨놓고 책상 위에 버려둔 게 몇 달이라, 앞부분은 기억조차 가물하다. 재밌었던 것은 아마존인가? 어디 밀림 속 원주민이 북 소리로 소통하는 내용. 이들은 북소리 만으로도 정확하게 의미를 전달한다고 한다. '네 아내가 출산했으니 어서 집으로 돌아오라.' 뭐 이런 내용도.
비결이 뭔고 하니, 바로 이들 언어가 중국어처럼 성조가 있기 때문이다. 북소리로 성조를 흉내내면 듣는 이는 그 성조에 걸맞은 음절을 상상하게 된다. 그게 가능할까? 무수한 언어 속에서 음의 투박한 높낮이 만으로 음절을 상상한다?
이게 가능한 것은 우선 언어의 '호응'의 문제다. 비슷한 성조에 올 수 있는 단어는 무한하겠지만, 단어와 단어의 연결에서는 제한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 책의 주제 이기도 한 '잉여성' 때문이다.
이들은 단순히 '시체'라고 하지 않는다. '차가운 대지에 누워 다시 일어나지 않는 몸'이라고. 우리네 관점으로 보면 감정의 과잉이고 군더더기인 수사를 잔뜩 갖다 붙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때문에 북소리로 표현된 이 문장은 정보의 손실이나 오독 없이 고스란히 듣는 이들에게 전달된다.
중간부분부터는 이해 안되는 부분도 있고, 까먹은 부분이 많아서 모르겠지만, 의미와 정보를 이 잉여성의 문제를 중심으로 서술한다. 장황한 수식어로 악명 높은 구술문학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오히려 장황하기 때문에 잊히지 않고 기억될 수 있었다는 것.
잉여성이 정보전달의 효율성으로 이어지던 흐름은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변화를 맞는다. 인쇄 기술이나 전신이 등장하면서 음성 매체를 다른 매체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다른 방식이 필요하게 된 것. 저자는 정보전달의 역사를 다루는 이 부분에서 암호와의 원리, 코딩 등을 설명한다.
유전을 정보전달의 측면에서 서술한 장을 지나, 이 책의 핵심이랄 수 있는 의미와 정보의 관계에 대해 설명한다. 정보에서 의미를 배제하면서 정보이론을 발전시켜왔던 측과 무의미한 정보를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흥미로운 것은 정보에서 의미를 배제하면서 오히려 정보전달 이론은 매체가 메시지를 만드는, 구조가 의미를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처럼 보인다.
시간이 있다면 다시 한 번 정독하고 싶은데, 잠시 뒤로 미뤄두기로. 비주얼 씽킹에 대해 도움이 될까하고 본 책이지만 딱히 연결지을 만한 것은 없었다. 다만 잉여성의 측면에서 하나. 지금껏 정보의 구조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 정보 전달에 주효한 방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잉여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그러나 나도 부지중에 느끼고 있었던 것이 단지 구조라는 뼈대만을 추릴 때 그다지 재미가 없었다. 오히려 상상을 그림으로 펼치는 것이 기억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렇게 올해의 마지막 책을 정리하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