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드라마

빨간 머리 앤

자카르타 2017. 8. 20. 01:01



늘어지게 초저녁 잠을 잤다. 빗소리가 잦아드니 먼데 개구리 울음 소리가 들린다. 8층까지 들리도록 우는 개구리는 어떤 사연을 갖고 있을까? 

잠은 다 씻겨 갔고, 밀린 리뷰나 쓰자 싶어 기억을 더듬어 보니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뜻밖에 ‘빨간 머리 앤’이다. 넷플릭스에서 올려놓은 거 말이다. 

다 본 것도 아니다. 이제 겨우 3편인데, 매회 사람 맘을 흔들어 놓는다. 3편은 앤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튕겨 나오는 얘기다. 이미 2편에 보였던 마을 사람들의 편견은 아이들에게까지 번져있다. 다이애나 덕에 간신히 무리 중에 들어가긴 하지만 앤은 오해를 사고 결국 제발로 학교를 나오게 된다. 

오해의 전모는 꽤나 복잡하다. 젊은 선생과 과년한 학생 사이 썸씽이 있었고, 둘 사이에 대한 앤의 묘사가 수위를 넘었다. ‘주머니 속의 쥐를 만진다.’ 성교를 암시한 앤의 표현을, 다른 아이들은 이해하고 있었고, 앤은 더러운 아이로 찍혀 배척당한다. 앤만이 아니라 앤의 양모가 된 마릴라도 모임에서 거절당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감명깊었던 것은 매슈가 이 상황의 본질을 파악하는 장면이다. 매슈는 이 설화의 시시비비를 가리려 하지 않는다. 앤이 정말 그런 말을 했는지, 앤이 그 말의 의미를 알고나 있었는지를 따지려 들지 않는다. 대신 그는 앤이 그동안 식모살이를 하면서 성교 현장에 부주의하게 노출되어 있었던 것이 문제의 본질임을 이해한다. 

오해는 오해의 과정을 서술하는 것으로 풀리지 않는다. 상대를 포용할 수 있는 것은 사실에 대한 이해 때문이 아니라, 이해 전 그를 이해하려는 태도 때문이라는 거. 40분짜리 드라마가 이렇게 묵직하게 때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큰 울림을 남긴다. 

앤을 맡은 주인공은 정말이지. 너무 능청스럽게 연기를 잘 한다. 책을 본 친구 얘기로는 그냥 앤 그 자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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