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현실이 압도하지만, 나는 왜 다시 이야기를 읽고 볼까? 잊고 있었던, 어느새 익숙했던 빈자리를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지.
지안을 앞세우고 동네 아저씨들이 납골당을 나올 때조차도, 중년의 농담은 여전했다. 천애고아가 된 지안이 젖은 솜뭉치 같이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저들에겐 슬픔마저 식상한 것. 어느 기억의 갈피에 꽂아둘 지 앨범을 넘기듯 추억을 뒤지고 있었던 게다. 그런데 그 무료함이 도무지 무례하게 보이지 않더라. 동훈이 늘 얘기하듯, 괜찮아. 아무 일도 아니야. 모두가 한 목소리로 합창하는 듯 했다. 그건 너의 고통이 대수롭지가 않아서가 아니라, 그 고통 함께 견디면 헤쳐나갈 수 있다는 위로의 말이었으니까. 그래서 길 막힌다며 빨리오라는 누군가의 호통에 지안도 성큼성큼 뛰어갈 수 있었겠지?
지안에게는 그런 사람이 없었던 거다. 부모의 빚을 상속 거부할 수 있으며, 손녀는 부양의무가 없으며, 고스란히 폭력을 참을 이유가 없으며, 동료와 나누는 시시껄렁한 농담과 인사가 얼마나 소중하며, 배신을 당해도 이해할 수 있고, 배신을 해도 용서받을 수 있으며, 너도 언젠가는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걸. 그런 걸 알려주는 사람이.
그런 빈자리를 상상하고 기억할 수 있게 해준다. 너무 고마운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