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서는 읽지 않는다.
이유는 일본어 입문서처럼 읽어도 그다지 실력이 늘지 않으리라는 경험치 때문이기도 하고, 그 선동의 전제에도 전혀 동의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나 0.0001프로가 될 수 있다니! 야바위의 일종이다. 예수나 석가는 성자이기 때문에 그들의 삶은 범인은 감히 따를 수 없을 것처럼 생각하면서 어떻게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의 성취는 아무나 따라잡을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는지.
<신경끄기의 기술>은 이런 허위를 발랄하게 조롱한다. 우리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고, 사는 건 원래 그렇게 지리멸렬하고, 나의 지금 판단은 십중팔구 틀리기 십상이고, 무한긍정의 늪에 빠지지 말고, 거절할 건 거절해야 함을 인식할 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지금도 종종 인정투쟁을 벌이는 내게는 엄동설한 꼭꼭 닫아둔 창문을 열어 젖힌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내게도 이런 씁쓸한 진실을 얘기해주는 좋은 사람도 있다.
언젠가 교회에서 청년부 찬양인도를 맡았을 때다. 내심 오랫동안 탐내던 일이었기도 했고, 그만큼 잘 하고 싶은 일이었다. 자랑하고 싶은 속내를 품고 엄살을 부렸다. 조금 지나니까 진짜 걱정이 되고, 좀 더 뭔가 안달복달 준비해야할 것만 같았는데, 친한 형의 말에 화들짝 깨어났다. ‘난 그거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 안 해.’
‘뭐 대단한 일이라고.’ ‘뭐 대단한 자리라고.’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나에 대한 잣대를 이렇게 바꿀 때 마음은 평안해진다. 그렇다고 이 책이 마냥 루저 지향인 것은 아니다. 어떻게 삶에 조화를 이룰지는 모르겠지만, 내 자신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존재라는 것과 삶의 유한함을 강조하면서 마무리한다. 내 식대로 이해하자면 그것이 결국 영성이 아닐까. 더 큰 존재, 더 큰 세계와의 연결을 이해하고 느끼며 사는 것. 도시재생 일을 하면서 작은 이해에 매몰된 사람들을 보면서 아쉬웠던 것도 그런 대목인 것 같다.
책이 마냥 좋았던 것처럼 썼는데, 결국 헛헛함은 남는다. 삶이 말처럼 된다면야. 삶을 살아가는 정석과 매뉴얼이 있을 수 없듯이 결국 뜨겁게 데이면서, 혹은 지금 내 등짝에 붙인 핫팩처럼 언제 데였는지도 모르게 허물이 벗겨진 상처를 보면서 조금씩 고쳐나가는 것이 아닐까.
결국 이 책은 내가 처음 읽은 자기계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