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

서던 리치 : 소멸의 땅

자카르타 2018. 5. 3. 23:33





암이란 게 특정 세포가 무한 증식하는 거라고 들었다. 시한이 지나고 역할이 끝나면 사멸해야 하는 세포가 죽지 않고 분열을 거듭하면서 영속을 꾀하는 게 바로 암이라는 얘기다. 이기적인 세포가 암이 된다는 것. 이기심이야 개체 자신을 보전하는 주요한 기제이고 보면, 어쩌면 ‘이기심’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속한 몸과 나의 연결 고리를 생각하지 않는 무지가 더 큰 문제일 수도 있겠다. 결국 암세포의 무한 증식, 영양 독식으로 인해 모두가 공멸하고 마니까. 


<서던리치 : 소멸의 땅>의 주인공이 대학에서 암 세포에 대해서 설명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것은 꽤 의미심장하다. 곧 주인공이 탐험을 시작할 공간은 암세포의 이기심에 시간의 가속을 더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기심이 효율과 가성비와 경쟁력을 장착하는 세상.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가? 각설하고. 

미지의 물체가 떨어진 후 서던리치는 다른 우주의 법칙을 따르는 별천지가 된다. 그곳에서 생물들은 빠른 생장과 변이를 통해서 다양한 종으로 진화해 나간다. 그것은 처음에는 한 가지에서 난 다채로운 꽃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오지만, 결국은 재앙이 된다. 영화의 원제 <Annihilation 소멸>이 말하듯, 이 영화는 빠르게 진화하는 사회의 종착지는 결국 소멸이라는 것을 잔혹한 영상으로 펼쳐준다. 


암의 속성에 대해서 얘기들었을 때 나도 ‘빠르게 진화하는 별’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언뜻 보기엔 황무지인데 타험대가 도착하자마자 지구 생물 50억년의 역사가 단 며칠 만에 펼쳐진다. 마치 창세기의 지구처럼. 하루는 식물이 빠르게 퍼지더니 그 다음에는 곤충과 짐승들이 탐험대를 위협하고 급기야 탐험대의 몸도 변이하기 시작한다는 얘기. 

컨셉만 있지 생물학에 대해 전혀 무지하고, 다른 글감도 있어서 안쓰고 있었지만, 쓴다고 해도 이 영화 <서던리치>보다 재미가 없었을 것 같다. 이 영화의 감독 알렉스 갈렌드는 전작 <엑스마키나>에서 보였던 것처럼 꽤 익숙한 주제, 소재들을 기묘하게 배합해 나가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서던리치>에서는 묵직한 주제를 개인의 심리 변화와 맞물리게 한 것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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