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혁과의 이별식으로는 의미 있음. 그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보게 되어 좋다.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며 작별을 고하는 것은 현실과 겹친다. 마지막 정우의 상상 속에서 김주혁과 주고 받는 얘기도 그렇고. 거기서는 행복하신가? 라는 질문에 김주혁이 뭐라고 했던가? 아, 이런 벌써 기억이 안 난다.
김주혁의 등장 외에는 아무런 의미도 재미도 없는 영화. 통속 소설은 쓰레기고, 혁명에 대한 은유를 담고 있어야 진정한 문학이라는 생각부터가 고루하다. 웬 80년대 사회주의 사실주의? 그런 감독이 여자 배우에게 했던 말은 또 뭔가? 이렇게 군자연 하는 이들의 행태가 이렇다. 비겁하고, 후지고, 지루하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가장 감정이입을 어렵게 하는 것은 다양한 인지부조화다. 왜 김주혁의 뜨거운 삶이 정우의 문학을 통해 번역되었어야 했을까? 대중에게 널리 퍼지기 위해서 서사가 필요 하지만, 혁명을 위해서는 다시 현실의 순교가 필요하다는 모순. 그 모순은 해결되지 않은 채 끝나버린다. 도대체 이 영화에서 마지막 민중의 항쟁을 추동하는 것은 뭔가? 정우의 이야기인가? 김주혁의 희생인가? 이런 인지부조화를 곳곳에 드러난다. 예언서인 정감록과 이야기인 흥부전(그리고 판소리가)이 동시에 등장해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영악한 자본주의는 진보 가치도 상품화한다. 그건 양가적인 것이고 경계가 모호하다. 때로는 그 진보 콘텐츠, 진보 상품이 진보의 가치를 확산하는데 일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통찰없는 데다 매력도 없는 콘텐츠는 욕을 먹어도 싸다. 김주혁이 아깝다는 생각만 더 하게 만드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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