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잔뜩.
- 아 짜증나. 결말이 이게 뭐야?
- ㅋㅋㅋ 그럴 줄 알았어. 결말이 좀 뜨아하지.
- 뜨아한 정도가 아니야. 기본이 안 돼 있어. 도대체. 집에 숨어든 범인은 누굴까? 왜 들어왔을까? 어떻게 들어왔을까? 지하실에 뭐가 있을까? 두 모자는 어떻게 벗어날까? 뭐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무 것도 없잖아.
- 그게 의도인 거지. 반전인 거고. 관객의 기대 그 어떤 것도 충족시키지 않겠다는 어마어마한 반전.
- 장난 해? 반전은 그런 게 아니지. 관객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관객의 질문을 수정해 주는 건데. 이 질문들은 공포 영화의 관습이잖아. 대대로 내려온 가장 기본적인 질문들이야. 짜장면 시켰더니 만두 드세요. 그런 거잖아.
- 그런가? 지금 결말 때문에 그런 건데. 사실 결말 이전에는 그 어떤 공포 영화보다 심장이 쫄깃 하잖아. 공포 영화 본질에 가장 충실한 영화인 거지.
- 뭔 소리야. 그러려면 롤러코스터를 타지. 영화는 기본적으로 윤리에 대한 판단을 담고 있어야지. 관객의 선입견을 뒤집는 경우가 있더라도. 톨스토이가 그랬다잖아. 이야기란 ‘착한 여자를 사랑하고 나쁜 남자를 죽이는 것이 전부다.’ 기본적으로 선과 악에 대한 판단의 2진법으로 진행하는 게 서사야.
- 톨스토이가 그런 얘길 했어? 너 전에도 ‘초고는 걸레다’라고 한 게 톨스토이였다고 했다가 알고보니 헤밍웨이였잖아.
- 이번엔 맞아.
- 이번에도 톨스토이답지 않은데. 아무튼. 그걸 부정하는 게 아니야. 이 영화는 다른 영화 못지 않게 그 이진법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잖아. 슈퍼 여주인에 대한 묘사도 그 이진법 사이에서 진동하고, 괜히 친절한 남자도 그렇고. 심지어는 집을 빌려준 이모도 그런 진동 아래 놓여 있는 거지. 끊임없이 관객으로 하여금 이들 인물을 의심하게 하잖아. 다만 마지막에 그 진동을 멈추는 다른 공포 영화들처럼, 이 영화는 억지로 정리하지 않을 뿐이지.
- 일체의 판단을 중지하겠다. 뭐 하이데거야?
- 어 그럴듯한데. 그러면서 실존의 공포, 실존하는 공포, 미완의 공포를 완성하는 셈이라고나 할까.
- 미완의 공포를 완성한다. 완결한다가 아니라 미완을 지속하게 한다?
- 그런 거지.
- 꿈보다 해몽이다.
- 왜? 마지막에 그 오픈 하우스에 또 다른 손님이 들어가잖아. 그곳에서는 그런 이유없는 살인이 계속되겠지.
- 하, 묘하게 설득력있는데. 하지만 영화의 쾌감은 없어. 그건 아무리 쉴드를 쳐도 없는 건 없는 거야.
- 맞아. 하지만 난 또 이런 이야기를 하나의 증후로 보고 싶기도 해.
- 무슨 증후?
- 뭐랄까? 아직 정리는 되지 않았는데 말야. 넷플릭스가 비집고 들어온 열린 문틈으로 어떤 서사의 가능성들이 열린 것 같아.
- 뭐야? 이 영화 의역한 제목 ‘열린 문틈으로’가 그런 뜻이야? 갖다 붙이긴.
- ㅋㅋ 암튼 넷플릭스의 가벼움이 캡쳐한 당대의 감정들이 마치 크로키처럼 당대의 감정의 흐름, 운동성들을 잘 그려내고 있지 않은가 하는 거지. 이런 영화가 미결의 공포를 그려내는 것처럼. 그게 이 시대 정서와 맞는 면이 있다는 생각이다.
- 넷플릭스를 교묘하게 선전하는 군. 흠... 좀 생각해 보겠어. 넷플릭스 두고보겠어. 난 <블랙미러>나 보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