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

마더

자카르타 2017. 11. 27. 21:56




몰랐다. 궁지에 몰린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청문회에서 흔히 쓰는 얘기다. 나쁜 놈이 되기 보다는 멍청한 척 하겠다는 전략인데, 이 외피가 면피용일 뿐 아니라 기회를 엿보는 위장이라는 점에서 놈들의 사악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마더>의 끝무렵, 마더의 희생으로 다시 시작하면서 웃음을 흘리는 신의 모습도 그랬다. 순진한 무능력인 줄 알았는데 사악함이더라. 


카인과 아벨, 독생자의 희생 등으로 성경에 대한 해석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만 그 해석이 명쾌하게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더 정확히는 ‘마더’의 존재가 누굴 의미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누군가는 어머니 ‘대지’를 의미한다고 한다. 마더가 벽에 손을 대고 그 이면의 맥박을 읽는다는 점에선 그럴 연하지만, 그 대지가 신에게 끝없이 희생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인간의 이기적인 무례와 신의 순진한 무능력을 관조할 수 있는, 관조해야만 하는 존재는 과연 누구인가? 


더 혼란스러운 것은 이 영화에서 누구에게 감정이입을 해야하는지 였다. 그건 의지와 거기서 발생하는 갈등의 문제인데, 마더는 물론이고 인간들에게서도 의지와 갈등은 보이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인간들은 많은 분란을 일으키지만 그들은 그저 신이 정해놓은 궤적을 따라 흘러갈 뿐이다. 남은 것은 오직 감독의 위치에 있는 신뿐. 그러나 그 역시 영겁 회귀의 굴레에 갇혀있다는 면에서는 이 영화에서 의지를 가진 것은 아무도 없는 셈이다. 아마도 그동안 시나리오 씹으면서 제일 자주 얘기했던 것이 주인공의 의지가 안 보인다는 류의 얘기였는데, 주인공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 유명한 예 하나를 얻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난 이 영화가 성경에 대한 조롱이나 비아냥 같다. 신의 의지의 불합리성을 견딜수 있느냐고 되묻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창작이라는 감독의 직업에 대한 자뻑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낫겠다. (솔직히 후자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시간이 아까우니 뭐 하나 좋았던 장면 하나를 꼽아보자면… 아 맞다. 우리는 모두 본분을 잊은 조문객이라는 은유 하나는 좋았다.

'리뷰 >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87  (0) 2018.01.26
열린 문틈으로  (0) 2018.01.20
컨택트  (0) 2017.09.06
악녀  (0) 2017.07.09
녹터널 애니멀  (0) 2017.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