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에 대한 내 나름의 가설이 있다. 내 보기에 반전이란 어떤 질문에 이미 내보인 선택지 A, B 대신 C라는 선택지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독자나 관객이 몰두해 있는 질문을 하찮게 만드는 근원의 문제를 꺼내드는 순간 내뱉게 되는 ‘아하!’의 통찰말이다. 클린턴 식으로 치면 ‘문제는 OO야!’라는 선언이겠다. 어디까지나 내 가설이고, 종종 반전으로 유명한 작품들을 보면 어김없이 이 프레임을 적용해 본다. 그럼 어디 이 책에도 이 가설을 적용해 볼까?
이 책의 클라이막스는 유괴 사건이 끝난 후에 시작된다. 유괴범과 인질은 작당해 유괴 사건으로 꾸미고 부모로부터 돈을 받아낸다. 목적을 달성한 후 인질은 무사히 집에 돌아간다. 이때까지 독자의 관심은 오로지 무사히(?) 돈을 받아낼 수 있을까에 집중된다. 이때의 선택지는 성공하거나 잡히거나. 그러나 수금에 성공한 뒤에 이어지는 상황은 이 두 가지 선택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게 하고 결국은 질문을 수정하게 한다. 문제는 유괴범의 계획이 아니라 인질의 계획이었던 것.
이러고 보니 얼추 가설이 들어맞는 듯 하지만 또 어설프기도 하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사후확증편향 같기도 하고. 해석이 그럴듯해도 발상의 신비는 풀리지 않는다. 인질에게도 계획이 있을 수 있다는 발상은 어떻게 하게 된 것일까? 이 작품의 플롯에서 가장 맹점이기도 한 부분이 바로 그 ‘인질의 계획’이 시작되는 지점에 ‘우연’이 개입된다는 것이지만, 탁월한 이야기꾼의 훌륭한 대패질 덕에 그런 문제는 그저 사소하게 넘어가고 만다. 오히려 작가에게 부러워해야 할 것은 그 맹점을 극복하게 하는 집요한 디테일들이 아닐지.
여름 내 서너권 읽었던 히가시노 게이고와는 이제 작별을 해야할 듯. 재미있기는 한데 <용의자 X의 헌신> 같은 작품이 갖는 찡한 구석은 없는 것이 영 내 취향은 아니다. 그래도 아닌데 아닌데 하면서 끝까지 속게 만드는 묘한 재주가 있는 이야기다. 마치 보이스피싱처럼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ATM기 앞에까지 가게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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