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책

의자 놀이

자카르타 2018. 10. 3. 12:52




늦었다. 늦어도 많이 늦었다. 30명이 목숨을 잃을 때까지 모르쇠였다가, 해직 노동자들의 복귀가 결정되고서야. 읽는 내내 그간의 무관심이 낯뜨거웠다. 궁금했다. 그토록 잔인했던 사회를, 이제 겨우 복귀되었다고 해서, 그들은 용서할 수 있을까? 식구를 자처했던 이들로부터 거대한 새총으로 쏜 볼트 너트를 맞아야했던, 함께 죽을 수 없다. 너희는 나가라 소리를 들었던 이들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았던 사실. 한상균 노조 위원장이 자구책을 제시했었다는 것. 하루 5시간 노동을 통해서 임금을 나누고, 자신들의 퇴직금을 담보로 천 억원의 투자금을 마련하려고 했었다는 것. 자구책이 없다고 해도 노동자들의 파업의 정당성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쌍용차를 살리려 몸부림 친 것은 누구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들의 머리 위로는 경찰의 컨테이너가 떨어지고, 테이저를 맞고 쓰러진 몸 위에 경찰봉이 난무했지만 그들을 죽음에 이르는 절망에 빠뜨렸던 것은 구속과 퇴원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그들에게 찍힌 낙인이었다. 그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 의료보험료 지급 환수 고지서. 당신들은 범법을 행하다 다친 것이니 국가가 돌볼 필요가 없다는 선 긋기. 국가와 사회와 이웃이 찍은 낙인이 그들을 죽였다. 

 

여기엔 직접 가해자인 이명막 정부의 책임과 쌍용차 고위직들의 책임도 상당하지만 노무현 정부 당시 매각을 결정했던 책임자들과 그리고 지금의 민주당도 마땅하다. 어설픈 신자유주의, 민영화의 밑그림을 너무나 치명적이었다. 안온한 중류층을 형성하던 노동자들이 해고와 함께 죽음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은 지금도 여전하다. 이명박 정권이 간교했던 것은 모두가 제 발끝만 보며 살 수밖에 없어 누군가 일회용 물티슈 처럼 구겨질 때 아무도 돌아볼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한 것이겠지만. 그 첫단추를 끼워준 이들의 책임도 무시할 수 없다. 지금 그들이 정권을 잡고 있기에 책임 추궁은 더욱 가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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