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킨타이어가 그랬다지?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는 그보다 선행된 질문 - 나는 어떤 이야기의 일부분인가에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답할 수 있다.' 아서야 말로 이 답을 찾아 헤맸던 것 같다. 나는 어떤 이야기의 일부분인가? 장애를 극복하고 성공한 코미디언 신화의 일부분일까? 아니면 대재벌의 숨겨진 소공자의 이야기? 가난하지만 진실한 사랑을 꽃피우는 예술가의 이야기?
아서의 경로 <조커>가 당혹스러운 것은 악인의 서사여서가 아니라, 장르의 관습이 되어버린 이 몇 가지 '신화'를 차디찬 길바닥에 패대기 쳐 버리기 때문이다. 성공한 코미디언의 신화는 해고와 첫 살인으로 종지부를 찍고, 소공자의 이야기는 아버지로 믿은 사내의 주먹에 코뼈가 부러지고서 접어야만 했다. 끝내 아서가 찾은 이야기는 시궁창에 뒹구는 현실이다. 비극이라기엔 그다지 우리의 현실과 멀지 않은, 만연한 폭력과 불평등, 한겹 망상으로 가린 깊은 우울로 가득찬 현실이다. 이야기 속 현실이 당대의 현실과 아슬아슬하게 가깝기 때문에 섬뜩하고, 서사 밖의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서사 속에서 그가 운명으로 받아들인 것이 극단의 폭력이기에 더욱 두렵다.
계단을 내려오던 조커의 춤은 자신이 비극의 일부임을 깨달은 고통에 찬 몸부림일까? 그토록 찾은 자기만의 서사를 발견한 희열의 몸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