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

그랜 토리노

자카르타 2020. 1. 25. 18:25




- 어땠나? 그랜 토리노?

- 경상도 사투리인가? 그랜 토리노?

- 썰렁하구만. 클린트 이스트우스다 열일 하데. 이 시나리오를 다른 배우가 했어봐. 그저 그런 영화였을 것 같은데.

- 맞지. 그렇지만 그게 영화의 가치가 떨어지는 이유일 수는 없지. 애초에 클린트 이스트우드 시나리오, 연출, 주연인 영화고 이 셋을 분리할 수 없는 영화니까.

- 그건 인정. 그래서 더더욱 이 영화가 이야기 자체보다는 다른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아.

- 72년형 그랜 토리노처럼 말이지? 나도 느꼈어. 월터 코왈스키가 말하는 한국전에서 저지른 만행에 대한 회고는 과장됐지만 자신의 필모그라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더라고.

- 마지막에 몽족에게 폭행을 당한 수를 보고 월터가 격분하면서 '이건 아니야'라고 하잖아. 뭔가 판단이 유예된 삶을 살다가 어느 임계점에 이르러서 판단을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된 거지.

- 그게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극중 월터의 대단한 면인 것 같아. 대부분 나이를 먹으면서 하는 판단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자신을 지키는 쪽으로 하기 마련이잖아.

- 그렇지. 저런 일이 우리 옆에서 벌어졌어봐. 하여튼 못 사는 나라에서 온 것들이란! 하면서 낙인을 찍어버리고 말 것 아냐. 월터의 초기의 캐릭터도 그와 비슷했고.

- 그게 신기하데. 영화 초기에는 아시아 사람들에 대한 경멸, 혐오가 보이는데, 개인이 만났을 때는 또 다르 거든. 그게 잘 이어지던가?

- 충분히 부드럽게 이어지던데? 인지상정인 거지. 처음 옆 집 일에 개입했던 것은 자기 마당을 침범했기 때문이고, 그 다음은 더 경멸스런 흑인이 아시아 여자를 위협하는 상황이었던 거고. 그러다 병들고 배고프고 하다보니 음식에 끌려서든 정에 굶주려서든 혐오하던 아시아인들의 틈에 끼어들게 되는 거지.

- 거기서 내가 아시아인들과 다르지 않구나, 느꼈지.

- 그러게 그 장면도 좋더라. 아주 단순한, 배고픔을 면한 인간의 트림 같은 일성일 수 있지만 솔직한 거잖아. 쪽발이 차를 파는 아들을 경멸하면서, 자신은 아시아인들의 정서와 같다고 느끼는 것. 너무 인간적이야.

- 이런 이야기가 보수를 자처한 사람에게서 나왔다는 건 늘 신기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를 보면서 늘 갖는 생각이야. 가장 보수쪽으로 치우쳤던 그 영화 뭐야? 저격수 나오는 거. 그것 조차도 영웅으로만 그리지 않거든.

- 보수, 진보를 가르기 전에 인간에 대한 탐구,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행동인 폭력을 그려왔던 그였기에 그럴 수 있는 걸까?

- 거기에 이 배우와 함께 수십 년을 거친 관객들도 공감대를 이루고 있으니까 이런 이야기가 가능했던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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