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인식을 굳이 깨달음이라 부를 이유는 없다. 그건 진보하는 성찰이라기 보다는 색다른 감각이다. 안쓰던 근육을 쓰는 것과 같은. '내가 아는 전부'라는 껍질을 깼으면 이제 '전부'라는 것은 과연 '전부'일까 의심하고 겸손해지는 것이 모순이 없는 태도겠다.
영화 '경계선'이 좋은 이유는 그런 겸손함이 보여서다. 겸손, 겸손은 힘들어. 오죽 어려우면 노래까지 나올까 싶은 그 겸손.
지성을 가진 존재가 인간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까발린 뒤에도, 영화는 관객에게 그 '다른 존재'의 룰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들 스스로도 정체성이 혼란스럽고, 모호한 실존에 방황한다. 냄새 만으로 사람의 감정을 읽는 존재. 식스 센스로 확장된 차원은 새로운 우주를 펼쳐보일만 한데, 그게 또 뭐 대순가? 식스 센스든 세븐스 센스든 또 그 차원의 인식은 그만큼 혼란스럽다는데.
자신에게 빌붙어 사는 남자의 냄새에서 언젠가 수치심이 사라졌을 때, 그때까지 그의 외도를 참았던 여주는 혼란스러웠을 게다. 같은 종족의 연인이 풍기는 살의와 짝짓기를 갈구하는 냄새는 또 어땠을까?
다만 감독이 '오직 인간만이'의 경계선을 허물고 남은 것은 새로운 감각들이다. 기형인줄 알았던 여주의 성기가 처음 발기할 때의 쾌감 어린 고통, 어금니에서 씹히는 귀뚜라미 키틴질의 식감, 벌거벗고 숲을 달릴 때 온몸을 스치는 숲의 손길, 남성이 느끼는 출산의 고통... 영화는 상상하기에 버거울 정도로 낯선 감각들을 펼친다.
그래 영화가 이런 맛이 있어야지. 낯선 상상이 이가 돋듯이 간질이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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