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왜 이야기에 빠져드는가? 결론은 이야기를 통해 인생을 시뮬레이션 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의 상상 속 이야기를 봐도 위험에 대한 설정으로 가득차 있음. 지옥은 이야기 친화적임.
오죽하면 꿈도 이야기로 꿀까? 꿈이 시뮬레이션이라고? 모의 실험이라고 하기엔 너무 허황된 거 아니야? 그래서는 시뮬레이션의 의미가 없잖아. 노, 노. 실제로 허황된 꿈은 극히 일부라고. 무리하게 맥락을 만들어내는 이야기에익숙한 뇌가 만들어내는 환상. 대부분은 위기 상황에 대한 시뮬레이션. 그러니 꿈처럼 달콤했다는 말은 적절치 않음. 프로이트 웃기지 마라.
셜록 홈즈의 허구를 까는 내용은 약간 통쾌. 브라운 신부 같은 고전 추리 소설을 보면서 늘 하던 생각. 세상이 만만하냐?
136페이지 삼각형과 사각형, 원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실험은 한 번 해보고 싶음. 어떻게 해서라도 맥락을 만들어내는 성향을 확인할 수 있음. 실은 이거 1997년 한예종 입시 시험 문제. 옛날 생각 나네.
좌뇌 우뇌 분리 환자의 허황된 이야기 지어내는 내용은 재밌네. 그런데 좌뇌, 우뇌 나뉜다는 얘기는 이제 구라 아님?
음로론은 스토리텔링 애니멀의 특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요즘 안그래도 진보, 보수 가리지 않고 나오는 온갖 음모론에 질리고 있음.
이야기의 윤리는 점점 흥미로운 주제. 결국 공포와 긴장을 만들어내는 것도 이런 윤리를 기저에 의식하고 있어서가 아닐지. 암튼 윤리를 어떻게 훼손하고 지키는지가 서사의 긴장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인 것 같음.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은 도대체 어떻기에? 읽어봐야겠는데 엄두가 나지 않음.
히틀러와 바그너의 이야기는 서프라이즈 같았음. 히틀러가 그린 그림들 보고싶네.
이야기(게임)가 긍정 영향을 줄 수 있다면 부정 영향도 줄 수 있다는 대목엔 깊이 공감. 옳은 얘기임. 다만 긍정 효과가 미약한 만큼, 부정 효과도 과장하면 안 되겠지.
올해 시작하면서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어볼까? 예문에 나온 대화는 전혀 기억이 안 나네.
기억의 진실에 대한 실험도 재밌네. 그러나 굳이 기억의 진위를 밝히기 위해 개인사를 몇년 간격을 두고 물어볼 것 있나? 그냥 몇 년 전에 나온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보면 되지. 바보들. 당장 식스센스 중요 장면 물어보면 기억하는 게 다 다를텐데.
VR로 점찍은 이야기의 미래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