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빠서일까? 요즘은 엄두를 못 내고 있는 일인데, 마음이 심란할 때면 이면지를 정리했다. 그러고 보니 최근 몇 년 동안은 이면지 정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게 사는 건가?
남들이 흔히 하는 게 이면지 정리 아니냐 하겠지만, 모르는 말씀이다. 생각 외로 이면지 정리를 '제대로' 하기란 쉽지 않다.
우선 이면지를 구출하는 단계가 필요하다. 이면지들은 대부분 복사기 옆에 A4지 박스에 쳐박혀 있기 십상인데, 이들을 집어들어 간추리는 순간부터가 갈등의 시작이다. 이면지라는 것이 나름 용도폐기된 존재들이고 보니, 오랫동안 그들의 존중받아야 할 '자원'으로서의 가치는 철저히 무시당하기 마련이었다. 찢어진 종이, 뜯겨진 종이, 씹힌 종이(이 세가지가 어떻게 다른지 모른다면 당신은 아직 이면지를 정리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구겨진 종이, 접힌 종이, 양쪽에 인쇄가 된 가짜 이면지, 양쪽이 멀쩡한 가짜 이면지, 백지 부분에 볼펜 낙서가 되어 있는 종이... 이쯤되면 종이도 사람들처럼 각자의 생이 있고, 사연이 있고, 캐릭터가 있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아무리 낙서 몇 퍼센트, 주름 몇 개를 기준으로 삼고 다가가도 매번 각각의 종이의 사연에 이런 기준은 무력화되곤 한다. 이건 제도와 절차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그렇다고 각각의 사연에 모두 응답할 수는 없는 터. 결국은 윤리와 실존의 문제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이때문에 때로는 '이면지'라는 정의에 어긋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가령 백지 부분에 '이면지' 도장이 찍혀있는, 운명의 장난을 겪은 억울한 이면지를 만났을 때다. 어떤 바보가 인쇄면에 찍어야할 '이면지' 도장을 백지에 찍어 재기의 기회를 날려버렸던 것이다. 이면지가 되고자 그 고통을 견뎠건만 이면지의 낙인이 이면지로서의 존재를 부인하는 이런 뭣같은 상황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면 그건 사이코패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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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힘들다. <연필 깎기의 정석>의 리뷰는 이 책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다른 <.... 정석>을 쓰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몹시 피곤하네. 암튼 신선하다. 이런 소소한 글쓰기 탐난다. 책이 소개한 빈티지 연필깍이도 탐나고, 부록에 소개한 진짜 있을까 싶은 사이트들도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