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책

단단한 삶

자카르타 2020. 7. 28. 00:24

 

3주 전인가? 공모사업 심사를 마친 날 몸살을 앓았다. 하루 종일 에어컨 바람 아래 앉은탓에 냉방병에 걸린 것일 텐데, 몸이 아프니 덩달아 마음도 성치 않았다.

 

그 전주엔 평소 젠틀하던 주민이 주차 지원에 선정되지 않은 문제로 소통방을 뒤집어 엎고 간 일이 명치에 걸린 듯 영 내려가지 않더니, 몸살이 온 김에 도졌나 보다.

 

불안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주말 내내 집에서 앓으면서 공모에 떨어진 주민들이 항의할 일, 주차장 지원 관련해 협의할 일을 생각하니 심장이 떨려와, 이런 게 공황인가 싶었다.

 

주말 사이 몸을 추스린 뒤에 마음에 내린 처방은 '일상 되찾기'였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로 일상을 흩어버리지 않기. 그 일환으로 틈틈이 들고 다니며 읽은 책이다.

 

작가는 '자립은 많은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이다'라는 명제로 문을 연다. 자립은 누구에게 의존할 것인지 선택지가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럴 듯한 얘기다.

 

그러나 의존의 대상을 확보하는 것 마저도 양극화되고, 의존할 대상의 많고 적음이, 그게 바로 계층이고 계급이라는 걸, 이 책이 지적하지는 않는다. 대신 저자는 내 안에서, 내 주위에서 찾을 것들을 둘러보라 한다.

 

그가 내린 처방은 '친구'다. 진정한 친구는 나의 '자립'을 가능케할 뿐만아니라, '자립'을 가로막았던 '자기혐오'를 극복하게 해준다. 동어반복이지만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진정한 친구다.

 

원래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결국은 내면의 문제, 개인의 태도의 문제로 다루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인생이란 파도를 넘는 최소한의 기본기이겠으나, 그래서 하나마나한 소리라 생각했다. 안 되는 이유가 있으니까 안 되는 거겠지.

 

그럼에도 최근 내 일상을 추스르는데 꽤 도움이 됐다. 아주 종종 매일 먹는 밥을 왜 매일 먹는지 잊는다. 몇 가지 불안을 자극했던 문제들을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처리해주는 사이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친구'와 '의존'의 가치를 책이 아닌 삶에서 배운 것은 이 책을 읽는 동안의 세렌티피티.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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