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신의 손이 구름 사이로 나와 계시를 써주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인간의 바람이겠다. 하지만 이미 예수가 지적했듯이, 숱한 선지자를 보냈어도 그들을 돌로 쳐 죽인 게 인간이다. 아마 구름사이에 손이 나오는 것 이상의 신비와 숭고가 펼쳐진다고 해도 인간은 과히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적어도 <절망의 구>가 바라보는 인간상은 그렇다.
어느날 지름 2미터의 구가 도시에 나타난다. 접촉한 자들은 모두 삼킨다. 구는 스스로 분열해 증식하고 오래지 않아 지구상의 모든 인간들을 삼킨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최후의 사람'에서 소멸의 정점을 찍은 구는 핵이 융합하듯이 합쳐지고 마지막 하나마져 사라지자 구가 삼킨 사람들이 다시 나타난다. 사라졌을 때 모습 그대로.
여기까지라면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자들의 도시'와 매우 비슷하다고 느낄 텐데, 이후에 전혀 다른 이야기가 덧붙는다. 사람들이 다 돌아온 것은 아니다. '사회'가 붕괴될 때 분출된 '야만'에 희생당한 사람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돌아온 사람들은 '최후의 사람'에게 책임을 돌린다. 그가 '최초의 목격자'이면서도 경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 이기적으로 자기 목숨만 챙겼다는 것이 그 이유다. 주인공인 '최후의 사람'은 대중의 광기 속에서 분열하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원인도 원리도 모르는, 비록 그것이 재난일지언정-사실 '숭고'의 근원은 '공포'라고 하지 않나?- 신비와 숭고를 경험한 이들이 다시 삶을 되찾은 뒤에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분노를 쏟아낼 '희생자'를 세우는 일일까? 모든 인과관계를 초월한 사태를 겪은 이들이 왜 무리하게 비약하면서 재난의 책임을 지울 한 사람에 집착하는 것일까? 모든 사건이 소멸되는 '사건의 지평선' 언저리에 다녀온 이들이, 사건의 원흉을 어거지로 만드는 이유는 뭘까?
신비와 숭고를 경험한 이후에도 변하지 않는 인간상은 흥미로운 주제이겠으나, 이 이야기에서 그리는 인간보다는 <미스트>에서 괴물을 보고 광신에 빠지는 이들이 훨씬 공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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