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책

아픔이 길이 되려면

자카르타 2020. 8. 9. 20:59

 

마빈 해리스가 종교나 규례까지도 물적 토대 아래 두려고 했지만, 난 종교의 '계시와 계명'이야 말로 자본의 셈법을 간단히 뛰어넘을 수 있는 근거가 되지 않을까, 아직도 기대를 접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 자구에 얽매여 동성애에 대한 혐오를 일삼는 모습을 보거나, 태극기 부대 행렬에서 십자가를 발견하면 차라리 과학의 합리와 논리가 종교를 대신했으면 싶다.

 

가난한 자, 이방인, 병든자, 재난을 당한 자, 해고당한 자, 성소수자, 성전환자 등 당연히 사회가 살피고 돌봐야 하는 일의 당위마저도 흔들리자, 사회역학자의 세심한 연구가 종교의 계명을 대신한다. 김승섭의 연구와 글은 인간의 온기를 잃지 않으면서도 차분한 과학의 논증을 이어나간다. 사회는 왜 가난한 자의 아픔에 책임이 있는지를 조목조목 짚어나간다.

 

마지막에 사회활동가와 연구자의 갈림길에 섰던 그의 고민을 나누는 것도 좋다. 사회 활동가처럼 살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공감이 될만한 길을 보여준다. 내리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다면, 함께 맞아주겠다. 삶의 방식은 여럿이겠으나 약자에 공감하는 그 마음은 하나이기를. 많은 이들이 읽으면 좋겠다. 요즘도 윤리나 도덕 과목이 있을까? 있다면 교과서 대신 이 책으로 수업을 하면 좋겠다. 이 책으로 성경 공부를 대신하면 좋겠다.

 

책을 선물해 준 비에게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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