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책

나는 선비로소이다

자카르타 2020. 10. 12. 22:31

 

선조 때 대학자 송익필이 어떻게 노비로 전락하게 되었는지를 담았다.
송익필은 많은 소설과 기축옥사를 다룬 저작에서 정여립의 난을 조작한 모사가로 표현된다. 책의 저자는 상상을 배제하고 가능한 고증을 총동원해 이런 혐의를 부정한다.

책이 중점으로 다루는 것은 송익필의 집안을 노비로 몰락하게 한 조선시대의 소송의 과정이다. 경국대전을 기반으로 다져진 조선의 공고한 소송 체계를 소개하면서, 또 그러한 일국의 체계가 사사로운 원한과 당쟁 속에서 어떻게 와해될 수 있었는지를 소개한다.

송익필의 악연은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할머니가 안돈후라는 인물의 비첩에게서 난 딸 감정이다. 이후 감정이 결혼한 송린이 관직에 오르고 그의 아들이자 송익필의 아버지인 송사련이 당상관에 오른 것으로 봐서 감정이 속량된 것이 분명하지만 100년이 지난 1586년 안씨 집안의 후손은 송씨 가문이 감정의 후손이기에, 즉 과거 자신의 집 노비의 소생이기에 송씨 집안 모두 안가의 노비라며 소송을 벌인다.

이 황당한 소송은 송가에 대한 안가의 원한이 배경이다. 송익필의 아버지 송사련이 안씨 집안 형제들의 역모 사실을 고변해 안씨 집안이 멸문지화를 당했다. 그게 1521년 중종조의 일이자, 송익필이 소송을 당한 해로부터 65년 전의 일이다.

65년 동안 안가는 정세를 이용해 소송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실이 1586년의 재판으로 귀결된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다른 책을 통해서 얻은 정보로는 안씨 집안은 억울하게 멸문했고, 와신상담 끝에 정의를 실현했고, 송익필은 모사를 그치지 않아 기축옥사로 수많은 동인에게 복수를 했던 이미지로 기억되고 있었다.

상반된 정보를 담고 있지만 송익필이나 정여립에 대한 그 어떤 기록보다 고증에 의한 주장이어서 신뢰를 더한다.

53세의 나이에 대문장가이자 유학자의 신분에서 노비가 되어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송익필의 이야기는 드라마로 만들어도 좋을 소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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