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야 미친다> 이후로 정민의 책에 꽂힌적이 있었다. 오랜만에 그의 책을 만나 반가웠는데 그닥. 옛 사람들의 독서 예찬론, 방법론이 고루했다. 여기 소개된 인사들에 따라 주장이 엇갈리기는 한데 대부분 옛 선인들의 책에 토달지 말아라, 라는 투.
오직 연암 박지원 만이 권위에 짓눌리지 말고 자기만의 책읽기를 하라고 권한다. 역시! 번역에 따라 다르겠으나, 문장도 홀로 빼어나다. 정조가 거슬렸던 것이 이런 것이었을까? 몇 구절 담아놓는다.
"마을의 꼬맹이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는데, 읽기 싫어함을 야단치자 이렇게 말하더군요. "하늘을 보면 파랗기만 한데 하늘 천 자는 푸르지가 않으니 그래서 읽기가 싫어요." 이 아이의 총명함이 글자 만든 창힐을 기죽일 만합니다."
"저 허공 속을 울며 나는 것은 얼마나 살아 숨 쉬는가? 그런데 이를 적막하게 '조'란 한 글자로 말살시켜 버리면, 빛깔도 볼 수 없고 그 모습과 소리도 찾을 수가 없다. ... 어떤 이는 그것이 너무 평범하므로 산뜻하게 바꾼다 하여 '금'자로 바꾼다. 이것은 책 읽고 글 짓는 자의 잘못이다."
228페이지가 압권이다.
"그대가 사마천의 '사기'를 읽었다 하나, 글만 읽고 마음은 읽지 못했구려. 왜냐구요. '항우본기'를 읽으면 제후들이 성벽 위에서 싸움 구경 하던 것이 생각나고, '자객열전'을 읽으면 악사고점리가 축을 치던 일이 떠오른다 했으니 말입니다. 이것은 늙은 서생의 진부한 말일 뿐이니, 또한 부뚜막 아래에서 숟가락 주웠다는 것과 무에 다르겠습니까. 아이가 나비 잡는 것을 보면 사마천의 마음을 얻을 수 있지요."
사람들이 사기를 읽으며 생생하게 현장을 떠올릴 때, 오히려 나비를 잡는 아이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어야 그 본질에 가닿는다는 얘기다. 바로 은유의 사고.
"귀해졌다 하여 변하지도 않고, 천해졌다 해서 멋대로 굴지도 않는다."
"그저 읽기만 하는 것을 도능독이라 한다. 이런 독서는 절대로 사람을 바꿔 놓지 못한다. 말만 공부한다고 하고, 행실이 따라 주지 못하면 선비가 아니다. 입으로만 외우는 앵무새 공부와 읽는 시늉만 하는 원숭이 독서로는 삶을 바꿀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