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

비포 선셋

자카르타 2013. 12. 23. 22:44


비포 선셋 (2004)

Before Sunset 
8.8
감독
리차드 링클레이터
출연
에단 호크, 줄리 델피, 버논 도브체프, 루이즈 르모이네 토레스, 로돌프 파울리
정보
로맨스/멜로, 드라마 | 미국 | 80 분 | 2004-10-22
글쓴이 평점  


거울로는 자신의 달라진 얼굴을 보지 못한다. 우연히 친구들이 찾아와 엘범을 뒤져야 혹은 오래 전 SNS에 묻어둔 사진을 보고서야 그제야 우리가 얼마나 세월에 마모되어 갔는지를 안다. <비포 선셋>은 그렇게 옛 사진과 거울을 나란히 놓고 보는 듯한 영화다. 


가끔 아주 가끔 옛날에 사귀었던 여자 친구의 이름을 검색해 본다. SNS라도 하면 좋을 텐데 다들 가명을 쓰는지... 인터넷이 이렇게 퍼지기 전에는 종종 그런 상상도 했다. 동물원의 노래처럼 우연히 어느 지하철 칸에서 만나게 되지는 ? 어느 정류장에서 지나가는 만원 버스 속에서 그 얼굴을 보게 되지 않을까? 


다시 만나게 된다고 해도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친구 결혼식에서 짝사랑하던 친구를 만났을 때는 지금도 화끈거릴만큼 어이없는 실수를 했다. 내게 연애는 그렇게 한방향으로 흐르는 강물이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는 없다. 아마 나 말고도 대부분이 비슷하지 않을까. 


그런면에서 <비포 선셋>은 여전이 이 지닌 서사의 판타지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제시는 9년 전 이야기를 글로 써서 작가가--그것도 세계 투어를 다니는 작가가 되었고, 마침 파리에서 인터뷰를 하던 중 셀린이 그 자리에 찾아오게 된다. 비행기를 타야하는 시간을 목전에 두고 두 사람은 지난 추억이 가득한 앨범을 꺼내들고 시간이 얼만큼 자신들을 멀리 데려다 놓았는지, 그럼에도 두 사람의 마음은 9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갈 수 있는지를 탐색한다. 


왜 그때 하필 할머니가 돌아가셨을까? 운명의 장난을 탓하기도 하고, 연락처를 주고받지 않은 치기를 비웃기도 하고, 뜨거웠던 밤의 기억에 몸을 떨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서로에 대한 기억에 자유롭지 못함을 확인한다. 그러나 9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밤 서로가 서로에게 전부였던 밤은 지나고 서로 다른 이의 행복을 지켜야 하는 의무가, 짐을 싣고 기다리는 택시처럼 버티고 있다. 


제시는 현실이 가리키는 이정표에서 조금씩  뒷걸음질을 치다 영화는 끝난다. 과연 그가 9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갈 수 있을지는 모른다. 아니 사실은 알 것 같다. 너 이러다 비행기 놓쳐. 알아. 제시는 언제 마음을 굳혔을까? 


실은 2004년 개봉당시 이 영화를 보지 않다가 <비포 미드나잇>을 보기 위해 거슬러 봤다. 왜 진작 보지 않았을까? 10년 전 만났어야 했을 친구를 뒤늦게 만난 기분이라면 지나친 뻥일까? 예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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