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부제는 '뛰어난 용병술로 조선의 난세를 넘다'이다. 부제처럼 저자는 이순신의 대척점에서 무능한 왕의 전형처럼 인식되어 온 '선조'에 대해 다른 평가를 내리고자 한다고 한다. 서두에서 요약한 바에 의하면 전란과 당쟁은 선조가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의 흐름에서 벌어진 일이고, 그나마 그만하게 전란을 치른 뒤 생존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순신과 같은 뛰어난 인재들을 적시 적소에 등용해 쓸 수 있었던 선조의 용인술 덕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책의 의도를 뒷받침 하는 내용은 그다지 탄탄하게 제시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심지어는 저자가 역사 인물들에게 들이대는 잣대가 불균일하다는 의심도 갖게하는 서술도 상당하다. 가령 선조가 선양을 하겠다며 몽니를 부리는 것을 두고 저자는 '심신이 지친 선조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행위'라고 설명을 하지만 종전 이후 선양에 대해서 입을 씻고 영창대군에 집착하는 모습에서는 그저 이때의 달라진 상황만을 언급하고 있다. 오히려 기존의 학자들이 서술하듯이 이전의 선양 주장이 신하들의 충성을 확인하려는 제스쳐라는 판단이 더 일관성 있는 판단이지 않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역사서에서는 볼 수 없는 좀 더 촘촘한 사실들을 볼 수 있어서 유익했던 부분도 있으나, 이 책의 내용을 보더라도 선조의 업적이라고 할만한 것들은 그저 한글로 사서오경의 번역을 시도했다는 것 정도일 것 같다. 종계변무를 선조의 큰 업적으로 얘기하지만, 지금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거야 말로 조선 임금들의 가장 한심한 짓거리가 아닌가? 물론 지금의 관점에서 역사를 판단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역사를 본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지금의 관점'에서 본다는 얘기겠다. 그런 의미에서 선조는 가장 유능한 임금이 필요했던 시기에 수준 이하의 통치 능력을 보여줬다고 밖에는 평가할 것이 없지 않을까?
저자가 <이승만, 위대한 90년의 역사>라는 책을 썼다는 사실로 봐서 선조에 대한 오해나 이승만에 대한 오해를 뒤집고 싶어하는 것 같지만 역부족이다. 저자도 썼듯이한양에서, 개성에서, 평양에서 울부짖는 백성들을 죽여가면서 거짓말을 하면서 혼자 살겠다고 도망쳤던 일, 전란의 뒷수습을 해야할 때에 복수를 위해서 그것도 자력이아니라 중국의 힘을 빌려 대마도를 정벌하려고 했던 것들은 신기하리만치 이승만의 행적과 겹친다.
일말의 개인적인 변명거리나 상황 논리가 끼어들 여지가 없지는 않겠으나, 일단은 몇 대 맞고 시작해야 할 인물인 것 같다. 올바른 비판도 채 이뤄지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단연 수확이라고 할 만한 것들은 다양한 인물들의 세부를 알게 된 거다. 특히 모사꾼 이산해에 대해서는 많은 아이디어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