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장.
"여호와가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나다."
어렸을 때 이 장면을 두고 UFO의 기록이라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지금 봐도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할 만하다. 마치 여호와도 어떤 법칙에 종속된 듯한 인상을 풍긴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이 산의 경계에 가까이 다가올 때 해를 입을까 걱정하는 모습이 그렇다. 인간 언어의 한계, 그리고 성경을 기록하는 서술자의 한계겠다.
독수리처럼 품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해내셨다는 하나님의 말씀. 그 보호 가운데서 살아도 기억하지 못하고 곧 우상을 만들게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운명이 아이러니하다. 그저 배도를 손가락질하기보다는, 이제는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인간의 한계랄까.
20장.
"십계명을 받다."
시내산에 오른 모세에게 계명을 주신다. 무슨 말씀을 하실까 궁금해서 올라간 모세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뭔가 이제 감이 잡히는 기분이었을까? 뭘 지킬 것인지, 뭐는 자유케 될 것인지 알게된 기쁨을 누렸을까?
21장.
"부칙을 받다."
종을 풀어주는 기준에 대한 설명이다. 방금 종에서 풀려난 이들에게 종을 어떻게 관리할지를 가르쳐주는 것이 흥미롭다. 7년째에는 풀어준다는 정신은 희년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주인의 주선으로 만난 아내와 자식을 두고 가야한다는 조항은 야바위 같다. 누가 처자식을 두고 나갈 수 있을까? 주인들은 성실한 종을 영원히 붙들어 놓기 위해서 결혼을 주선했을까? 그런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요즘 사회가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 결혼해라, 자식을 낳아라, 권고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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