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는 셈 치자고 했던 감독들이 몇 있다. 국내에서는 김기덕, 홍상수가 그랬고 외국에는 라스 폰 트리에가 그랬는데 <마터스>라는 영화를 보고 이 감독 테일러 뭐시기도 명단에 올렸더랬다. 무슨 종교를 핑계삼지만 밑도 끝도 없는 가학의 가학을 위한 영화라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 제목으로 <베스와 베라>인 이 영화도 테일러 뭐시기의 인장을 그대로 품고 있다.
흔히 우리가 알고 능지처참이라고 알고 있는, 말에 사지를 묶어 찢어 죽이는 건 정확히는 '거열'이다. '능지'라고 하는 건 능욕을 지연시키는 것. 즉, <붉은 수수밭>에서 언뜻 보였던 것처럼 죽지 않을 만큼만 살을 저미는 행위를 말한다. 중국에서는 우리네 망나니처럼 이 '능지'의 전문가가 있어서 죽기전에 살점을 천 조각이나 떼어낸 기록도 있다고 한다.
충분히 '능지'를 행한 후에 피해자가 더 이상 고통을 느낄 수 없을 때 목을 잘라 죽이면 '능지처참'이라 하고 이를 포함해 능지로 죽이는 것 전체를 '능지처사'라고 한다.
<마터스>는 그 자체로 능지처사였고, 목적이 없는 능욕에 공허한 종교의 신비를 덧붙여 폭력의 공허함을 더 증폭한다. 목적조차 공허한 폭력이라니! 중국의 망나니는 왕의 지시라도 있었지만 이런 도착이 어딨을까 싶었다.
<베스와 베라>는 '능지'에서 가해자마저도 지워버리고 폭력 자체만 남겨놓았다. 그래서 파괴되어 가는 신체만 더욱 부각된다. 영화 스스로도 '인형'에 가하는 폭력이라고 할만큼 거기에 인격은 육체와 분리되는데 이 영화가 영민한 것은 그 '분리'를 피해자의 망상으로 표현한 점이다. 이 정도면 그야말로 경지에 오른 망나니짓이라고 할밖에.
목적도 인격도 배제된 '폭력' 그 자체의 공포에 대한 감독의 집착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어린 베스로 나온 테일러 힉스가 이 영화를 찍다가 무리한 감독의 요구에 따르다가 얼굴이 길게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다는 얘기를 들으니 더욱 밥맛인 감독인데… <마터스>와 이 영화 사이에 만든 영화가 또 입길에 오르는 걸 보면 궁금해 참을 수 없다는 게 또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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