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사람들이 하도까니까 오히려 편들고 싶네. 요즘 같은 세상에 클리셰 많은 게 무슨 흠일까? 최근에 본 <사일런싱>의 경우처럼 인물의 주요 갈등 축이 모순을 만드는 게 아니라면 클리셰는 그저 진부한 수식어로 받아들이면 될 듯하다.
사실 진부하다는 게 꼭 흠이 되지는 않는다. 관용어가 된 수식어는 원래 진부하다. 그러나 그 진부한 수식어들이 메시지를 효율적으로 전달한다. <신호와 소음>에서 소개하듯이 원시 부족이 북소리의 고저장단 만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클리셰가 된 미사여구 때문이다.
<일리어드>의 서사시처럼 그냥 '사람'이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여자가 산고 속에 낳은 이'라고 하는 진부한 표현 관습은 빈약한 매체가 복잡한 신호를 전달할 수 있게 만든다. 길어야 2시간 남짓 되는 제한된 매체에서 진부한 클리셰는 그래서 옹호받을 만하고, 또 그런 옹호 속에서 장르가 만들어진다.
필립 딕 K가 <임포스터>에서 쇼킹하게 소개한 폭탄이 장착된, 지가 사람인줄 아는 안드로이드 설정을 고스란히 가져온 것이 과연 욕먹을 일인지. 오히려 필립 딕 K가 진지하게 천착했던 설정을 단지 '똥 누면 사람'이라고 퉁쳐버리는 무성의는 <승리호>가 기존 클리셰를 대하는 자세로 인정하면 그만이 아닐지.
<승리호>에서 주목할 것은 SF의 여러 설정을 끌어모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게 어떻게 이야기를 전개시키는데 발목을 잡지 않을 수 있는지, 혹은 비슷한 <갤럭시 오브 가디언즈>가 어벤저스 시리즈와 합쳐지기 위해서 떡밥을 던졌던 것과 어떤 차별점이 있는지, 겠다. 이마저도 감독이 그런 승리호 유니버스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다고 하면 그만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