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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바

연출이 인상 깊어 감독의 전작들을 찾아 봤다. '옥스퍼드...'가 2008년이고 가 20017년이니 거슬러 내려온 셈이다. 한 공간에 영문도 모르고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다. 밀폐이긴 한데, 도심 속 도로를 향해 통창이 나 있는 바가 배경이어서 색다르다. 밖으로 나가려는 사람은 두어 발짝을 떼기도 전에 저격수에 의해 살해당했다. 바에 남은 사람은 8명 그리고 화장실에 처박혀 구멍이란 구멍에서 죄다 오물을 쏟아내는 남자 하나. TV는 총격 사실을 전하지도 않고 왜곡된 보도만 하고 있자, 사람들은 짐작한다. 정부가 자신들을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통제하고 있다고. 이유는? 자연스럽게 화장실의 남자에게로 혐의가 쏠리는데, 남자는 이미 가사 상태. 이들의 예상대로 정부는 바의 내부를 소각하고 소개 작전을 치르지만 ..

리뷰/영화 2021.08.01

재난 불평등

사기는 했지만 막상 읽으려니 뻔한 얘기이지 않을까 짐작했었는데 읽은 보람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재난에 더욱 취약하다는 걸 부인할 사람은 없겠지만, 저자는 재난이 일어나기 전과 재난 시 그리고 재난 후 복구로 나누어 각각 불평등이 어떻게 구조화되어 있는지 설명한다. 1장에서 저자는 우선 '재난' 그 자체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취한다. 재난은 그 자체로는 선도 악도 아니다. 홍수로 땅이 비옥해지거나 지하수량이 풍부해지는 것처럼 경제적인 면을 놓고 보더라도 재난 복구 시기에 더 큰 성장률을 보이기도 한다. 저자는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가 재난에 은유가 아닌 그대로 적용될 수도 있다고 한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2장부터 저자는 재난의 피해를 확대하는 요소를 지적한다. 재난에 대비한 법규를 집행하지 ..

리뷰/책 2021.08.01

옥스퍼드 살인사건

수학이 진리를 밝혀줄 수 있을 거라 확신하는 마틴(일라이저 우드)은 연쇄살인의 범인도 논리로 찾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반면 이미 연쇄살인과 수열을 비교하는 논문을 냈던 셀덤(존 허트) 교수는 마틴의 기대를 순진한 청년의 이상이라 여긴다. '수열의 다음 항은 그 무엇이든 올 수 있다고. 다만 수식이 복잡해질 뿐이지.' 인생이 수열처럼 수식을 발견하는 순간 다음 항을 예측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굳이 셀덤처럼 불확정성의 원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인생 살아봐라. 그렇게 생각대로 뜻대로 되나' 싶은 마음인데. 이야기는 마틴의 기대대로 흘러간다. 살인 예고장과 거기에 그려진 기호들이 마틴과 셀덤 그리고 관객은 수열 방정식 찾기로 빠져들게 만든다. 살인 예고와 단서로 주어진 기호라는 설정이 진부하긴 하지..

리뷰/영화 2021.07.30

Dialogue

맥기 할아버지의 는 아마 내가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은 책일 게다. 처음 읽고 홀딱 반해 600여 페이지를 90페이지 요약본으로 만드느라 몇 번을 거듭해 읽기도 했고, 그 후로도 일년에 한 번 정도는 꼭 읽는다. 그래놓고도 두번째 책 를 이제야 읽은 건 뭐랄까. 면목없는 마음이었던 탓도 크다. 이제는 좀 배운대로 변변한 글 하나 써볼 때도 됐는데 여전히 선생님 슬하를 맴도는 듯한 기분이랄까. 그러다, 시나리오 앞에서 몇 개월을 지분거리다 맥기 할아버지의 책을 집어 들었다. 이 책에서도 맥기 할아버지의 육성은 여전하다. '천재가 아닌들 어떠냐?' 천재들의 영감 따윈 내 알바 없고, 인생에 대해서 인간에 대해서 자신에 대한 질문과 탐구를 멈추지 말라며 다독인다. '대사'에 대한 내용이지만 결코 맥기 할아버지..

리뷰/책 2021.07.25

작은 마을 디자인하기

이란 책을 쓴 야마자키 료와 건축가 이누이 쿠미코의 왕복 서간집이다. 에서 야마자키 료의 스튜디오-L의 사례를 읽은 재미가 쏠쏠했다면, 이 책에서는 건축과 경관 디자인, 커뮤니티 디자인에 이르는 지형들을 훑고 있어 버거운 면이 있다. 소개된 책들을 다 보면 좋겠으나 찾아보니 아직 번역되지 않은 책이 태반이다. 2011년 6월부터 다음 해 5월까지 1년간 주고받은 38통의 편지가 담겼다. 계절별로 네 개의 챕터로 나뉘었는데, 첫번째 챕터는 경관 디자인으로부터 시작해 참여형 디자인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주로 건축과 경관 디자인에서 어떻게 '참여형 디자인'이 이뤄지게 되었는지 흐름을 담고 있어서 레퍼런스를 따라가기가 바쁘다. 두번째 챕터부터는 주민 참여의 실제와 커뮤니티에 대한 것을 다루고 있어 지금 현장에서..

리뷰/책 2021.05.30

밀리언 달러 베이비

슬플 것 같은 영화는 보지 않던 때가 있었다. 영화가 그런 건지, 내가 좀 변한 건지. 이제 보니 그다지 슬프지 않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의 정치 성향을 보면 자살이든 안락사든 절대 반대할 것 같은데 외려 이런 문제들만 골라 건드리고 있어 흥미롭다. 사회 규범과 최선을 추구하는 자유의지 사이의 간극을 이야기로 메우려고 하는 걸까? 그의 선택지들은 늘 자유로우면서도 자신이 지키려던 가치를 허문 뒤의 일이라 숭고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오히려 극중 인물이 허문 사회 규범의 가치는 실제로는 절대로 허물어지는 법이 없지만, 늘 한 가지를 덧붙인다. 마치 예수처럼. '안식일이 인자의 주인이 아니라,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다.' 프랭키가 신부에게 던지는 신학에 대한 까다로운 질문이나 딸에게 매주 편지를 보낸다는 ..

리뷰/영화 2021.05.01

짧게 잘 쓰는 법

글쓰기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은 많은데, 그 중 절차탁마의 길로 떠밀어 주신 분은 단연 옛 직장 선배다. 어느 그룹 사내 방송 팀에서 일할 때였는데 편집과 촬영을 담당했던 이분은 일주일에 반나절 편집하고, 반나절 촬영하는 날을 빼고는 온종일 주식화면만 들여다보던 사람이다. 꼴에 선배라고 선배 대접 따지는 이여서 나하고는 사이가 꽤 틀어졌는데 이 분이 내 글을 그렇게 잘근잘근 씹었다. 내 글을 읽으면 온 몸에 뭐가 스멀스멀 기어다니는 것 같다나. 지금 생각하면 아마 '지분거리는 글'이란 얘기였을 것 같다. 구구절절 문장도 길었던 터라, 방송을 녹음하러 온 성우들은 종종 '어휴 피디님 대단하시네요' 하며 웃었는데 그게 칭찬이 아니었던 거지. 그 이후에 여러 선생님들 글쓰기 수업을 들은 것도, 글쓰기 관련 책을..

리뷰/책 2021.04.28

기획이란 무엇인가

기획서 작업은 지금도 꾸준하게 하고 있는데 다 어께너머로 배우거나 혼자 익힌 거라 늘 어떤 갈증이 있다. 이제는 후배들에게 전해야 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더더욱, 그 동안 야매로 익힌 것들을 되짚어 보게 된다. 작년 가을에 3분의 2쯤 읽다가 접어두고 다시 시작한 터라 앞부분은 두번째 읽는데도 내 작업에 적용시킬만큼 머리에 남지 않는다. 다만, 문제와 문제점, 목표와 목적, 배경과 현상 등 기획서에서 명확한 정의없이 쓰던 용어에 대해 까다로울 만큼 정확한 정의를 고집하는 태도는 기획서를 쓰는 사람들이 배울만하다. 기획서를 클라이언트 구획과 기획자의 구획으로 나누고 앞의 구획에서는 철저하게 데이터와 클라이언트의 논리로 시작해야한다는 지적도 상당히 중요하고, 또 이 두 구획을 이을 접착제로 컨셉을 설명하고 ..

리뷰/책 2021.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