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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의 밤

넷플릭스 오리지널의 특성일까? 더 잘라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거의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이를 만회하고도 남는다. 차승원, 박호산의 연기에서 극이 만드는 대부분의 정서가 나오는 듯. 오히려 엄태구는 스타일로 끝까지 밀어부치는 뚝심이 대단하고, 전여빈은 모호한 듯 애매한 듯 싶은데 워낙 서사가 빨리 전개되다 보니 일관성이 모자라다기 보다는 그냥 혼란스런 캐릭터 그 자체인 듯 싶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라서 생각나는 건데 온갖 SF의 설정들을 끌어다 썼다고 에 대해 비난을 퍼붓던 이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봤나 모르겠다. 이 영화야 말로 온갖 클리셰들의 버무리가 아닌가?

리뷰/영화 2021.04.17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순번을 기다려야 하는 줄에서 웃돈을 주고 새치기 하는 것은 정당한가? 선뜻 아니라고 하기 어렵다. 놀이동산이나 극장에도 비행기에도 VIP코스가 따로 있으니. 어떤 긍정적인 행위를 장려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주는 것은 어떤가? 이 외에도 이 책엔 다양한 일상에 스며든 시장을 소개한다. 이전에는 차마 팔 생각도, 사려는 생각도 하지 못한 것이 돈으로 환산되고 거래되고 있다. 공장의 모든 노동을 계량하고 시간 대비 비용으로 환산한 테일러를 연상케 한다. 지금은 굳이 공장이 아니더라도 우리네 모든 행위가 돈으로 계량되고 만 것 같다. (이 책과는 다른 얘기지만, 그토록 떠드는 '공유'도 나에겐 그저 팔 수 있는 건 모두 팔라는 얘기에 불과하다.) 시장의 확대 혹은 침투로 인해 우리가 얻는 것과 잃는 것은 뭘까? ..

리뷰/책 2021.03.28

비주얼 리더

"식물은 모든 세포에 DNA가 내재되어 있어서, 뿌리에서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잎과 줄기가 제 할 일을 한다." 이 책이 목적으로 삼는 조직의 상이다. 조직이 지향하는 비전이 모든 직원들 마음 속에 각인되어 있는, 그래서 일사분란하게 행동하며 성취를 얻는 조직. 여기서 이미지는 '각인'에 주요한 수단으로 제시된다. 사람은 자신이 본 것의 20%를 기억한다고. 이를 압도하는 건 '경험'이다. 경험한 것의 60%를 기억한단다. 이 책에서 다루는 다양한 시각화의 방식은, 그래서 '비주얼'에만 그치지 않는다. 팀 내 구성원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에 공감하고 증폭하는 '경험'을 디자인한다. 다양한 시각화 논의의 방식을 소개하고 있어서 소개된 비주얼 툴들은 하나씩 조직에서 해보면 좋겠다.

리뷰/책 2021.02.23

사일런싱

(스포일러 가득) 해 아래 새 것이 없기 때문에 클리셰를 쓰는 것 자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는 심각한 오용의 사례가 될 듯 하다. 국립공원 관리인인 주인공은 몇 년 전 딸을 잃어버리고 생사를 알 수 없다. 그리고 최근에 국립공원 내에서 발견된 소녀의 시신과 억류 중 탈출한 소녀를 보면서 자기 딸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사건을 파고 든다. 이 또한 흔한 설정이지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오히려 대부분의 시청자와 창작자들이 갖고 있는, '새로움'과 '비틀기'에 대한 강박이다. 중반까지 보안관의 동생이 범인일 수 있다는 떡밥만으로도 충분했는데, 영화는 거기서 한 번 더 무리수를 둔다. 기존의 선택지에서 벗어난 인물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해도, ..

리뷰/영화 2021.02.14

승리호

여러 사람들이 하도까니까 오히려 편들고 싶네. 요즘 같은 세상에 클리셰 많은 게 무슨 흠일까? 최근에 본 의 경우처럼 인물의 주요 갈등 축이 모순을 만드는 게 아니라면 클리셰는 그저 진부한 수식어로 받아들이면 될 듯하다. 사실 진부하다는 게 꼭 흠이 되지는 않는다. 관용어가 된 수식어는 원래 진부하다. 그러나 그 진부한 수식어들이 메시지를 효율적으로 전달한다. 에서 소개하듯이 원시 부족이 북소리의 고저장단 만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클리셰가 된 미사여구 때문이다. 의 서사시처럼 그냥 '사람'이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여자가 산고 속에 낳은 이'라고 하는 진부한 표현 관습은 빈약한 매체가 복잡한 신호를 전달할 수 있게 만든다. 길어야 2시간 남짓 되는 제한된 매체에서 진부한 클리셰는 그래서 ..

리뷰/영화 2021.02.14

골목길 자본론

지역 활성화를 위해선 골목 자원을 개발해 골목길을 활성화해야한다. 이를 위해선 유수한 자원을 유치하고 계발할 수 있는 기획력이 필요하고, 소상공인들을 육성할 교육 그리고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할 공동체와 이를 촉진할 활동가가 필요하다는 것이 요점. 총론으로는 그럴 듯한데, 늘 그렇듯이 경제학자들의 이야기에 정이 떨어지게 만드는 그 숫자 놀음 이면에 누구의 '성장'이며 '발전'인지 밝히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은 여전하다. 환경 개선이라는 젠트리피케이션의 긍정 효과와 둥지내몰림을 혼용하는 것도 글의 신뢰를 떨어뜨리게 하고, 임대인과 임차인의 공동체 활성화를 이에 대한 대안으로 주장하는 것도 현실에 비춰보면 순진하기만 하다. 골목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 첫 단추로 스타벅스와 같은 유명 브랜드를 유치해야한다는 처방..

리뷰/책 2021.02.07

더 나이팅게일

신화가 만들어지는 지점에서 신화를 깨뜨린다. '유린된 여성이 악착 같이 복수를 수행한다'는 설정은 익숙하다. 강간이든 가족의 피살이든 폭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여성의 약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그만큼의 혹독한 수련 또는 희생을 거치면서 복수의 대상에게 무자비한 앙갚음한다. 이 과정에서 폭력은 이쪽 저쪽 가릴 것 없이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한쪽에서는 관음증을 충족시키고 다른 쪽에서는 대등하지 않은 대결에서 오는 긴장과 공포, 신체 훼손의 쾌감과 그로테스크까지 감각의 향연을 펼친다. 이 영화는 이런 관습들을 차례로 거부한다. 우선 주인공이나 다른 여성이 강간을 당하는 장면에서는 고집스럽게 여성의 얼굴 클로즈업을 쓰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그의 고통을 대면하게 한다. 주인공의 첫번째 복수가 이뤄지는 장면 - 소위..

리뷰/영화 2021.01.10

오직 독서뿐

이후로 정민의 책에 꽂힌적이 있었다. 오랜만에 그의 책을 만나 반가웠는데 그닥. 옛 사람들의 독서 예찬론, 방법론이 고루했다. 여기 소개된 인사들에 따라 주장이 엇갈리기는 한데 대부분 옛 선인들의 책에 토달지 말아라, 라는 투. 오직 연암 박지원 만이 권위에 짓눌리지 말고 자기만의 책읽기를 하라고 권한다. 역시! 번역에 따라 다르겠으나, 문장도 홀로 빼어나다. 정조가 거슬렸던 것이 이런 것이었을까? 몇 구절 담아놓는다. "마을의 꼬맹이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는데, 읽기 싫어함을 야단치자 이렇게 말하더군요. "하늘을 보면 파랗기만 한데 하늘 천 자는 푸르지가 않으니 그래서 읽기가 싫어요." 이 아이의 총명함이 글자 만든 창힐을 기죽일 만합니다." "저 허공 속을 울며 나는 것은 얼마나 살아 숨 쉬는가? 그..

리뷰/책 2020.11.12

나는 선비로소이다

선조 때 대학자 송익필이 어떻게 노비로 전락하게 되었는지를 담았다. 송익필은 많은 소설과 기축옥사를 다룬 저작에서 정여립의 난을 조작한 모사가로 표현된다. 책의 저자는 상상을 배제하고 가능한 고증을 총동원해 이런 혐의를 부정한다. 책이 중점으로 다루는 것은 송익필의 집안을 노비로 몰락하게 한 조선시대의 소송의 과정이다. 경국대전을 기반으로 다져진 조선의 공고한 소송 체계를 소개하면서, 또 그러한 일국의 체계가 사사로운 원한과 당쟁 속에서 어떻게 와해될 수 있었는지를 소개한다. 송익필의 악연은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할머니가 안돈후라는 인물의 비첩에게서 난 딸 감정이다. 이후 감정이 결혼한 송린이 관직에 오르고 그의 아들이자 송익필의 아버지인 송사련이 당상관에 오른 것으로 봐서 감정이 속량..

리뷰/책 2020.10.12